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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팅과 입찰의 차이를 점검하라

신오덕 2014. 9. 26. 12:55

 

[I ♥ 건축] 한전 용지 10조
기사입력 2014.09.25 17:40:33 | 최종수정 2014.09.25 17: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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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용지에 10조원을 베팅한 일에 대해 사람들 의견이 분분하다. 과한 액수를 입찰가로 정하는 독단적 의사결정 과정을 질타하는 의견부터 장기적인 안목의 결단력 있는 결정이었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무엇이 올바른 판단이었는지는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알 수 없을 것이다.

10조원 베팅을 변론하는 입장에서 몇 가지 이점을 생각해봤다. 첫째, 지난 수십 년간 삼성에 밀리던 현대가 삼성을 `큰 차이`로 이겼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다. 둘째, 평소 사회환원에 대해 소극적으로 비치던 현대차그룹이 공기업인 한전 부채 탕감에 크게 기여하는 형식으로 사회환원을 해서 그룹 이미지 쇄신에 이바지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모두 형이상학적인 브랜드 마케팅 측면에서의 이유일 뿐이다. 하지만 셋째 이점인 코엑스를 이용하는 측면은 건축적으로 실질적 이익이 있다.

한전 용지에 그룹 사옥이 들어서게 되면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코엑스 전시장, 무역센터, 호텔들, 공항터미널, 국내 최대 쇼핑몰을 자기 앞마당으로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처음에는 서울숲 앞의 삼표레미콘 용지에 초고층 사옥을 계획하다가 서울시의 반대로 삼성동 한전으로 급선회했다. 사옥이 서울숲 앞에 있었다면 직원들이 산책하기에는 좋았겠지만, 접근성과 여러 가지 시너지 효과에는 부족함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삼성동 한전 용지는 지하철과 강남에서 가장 넓은 차폭의 앞길을 소유함과 동시에 길 건너편에 정부가 수십 년간 수조 원을 투자한 국내 최대 부대시설을 간접 소유하게 된다. 이는 5조원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대충만 그려봐도 코엑스 블록과 연결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현대차그룹 사옥이 보인다. 한전 용지 감정가에는 현대차그룹 사옥과 코엑스 블록이 가지는 시너지 효과는 계산되지 않았던 것 같다.

현대차그룹이 한전 용지를 사서 아파트단지를 짓는다면 10조원의 베팅은 바보짓이지만 자동차그룹 사옥을 짓는다면 신의 한수라고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