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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인연의 힘을 갖추어라

신오덕 2014. 10. 22. 15:42

 

[역사의 향기] 김약연과 안중근
기사입력 2014.10.21 17:23:41 | 최종수정 2014.10.21 17: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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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7월. 뜨거운 여름이었지만 한반도는 일제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당하고 군대까지 해산돼 차가운 땅이 됐다. 군대가 해산되자 청년 안중근은 국외에서 의병 부대를 일으키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다니던 성당의 빌렘(J. Wihelm) 신부는 정교(正敎)분리의 원칙을 내세우며 "조선의 힘으로는 강력한 일본을 막아낼 수 없다"며 항일 운동을 하겠다는 안중근을 말렸다.

그런 와중에 어느 날 도인의 풍모를 지닌 한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자신을 `김진사`라고 소개한 뒤 안중근의 부친인 안태훈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대의 기개를 가지고 지금 이같이 나라 정세가 위태롭게 된 때에 어찌 가만히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려 하는가? 간도와 연해주는 조선인 100만명이 살고 있고 물산이 풍부하니 그곳으로 가라"고 말한 뒤 사라졌다. 이 일을 계기로 안중근은 간도와 연해주로 가서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정한다.

간도는 동북 지역 백성들이 척박한 땅을 개간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이룬 곳으로 항일 정신이 투철했던 곳이다. 안중근은 당시 간도에서 이름을 널리 떨치며 독립운동을 하던 김약연(金躍淵ㆍ1868~1942)이라는 사람을 찾았다. 시인 윤동주의 외삼촌이기도 했던 그는 민족교육의 요람 명동학교를 만들어 독립운동을 고취시키며 명성이 자자했기에 안중근은 그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던 것이다.

김약연의 얼굴도 모른 채 소문만 듣고 간도를 찾아간 안중근은 깜짝 놀랐다. 김약연은 바로 얼마 전에 자신이 만났던 김진사였기 때문이다. 안중근은 그 자리에서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고, 김약연은 그의 어깨를 감싸 안고 "조선의 미래가 청년에게 달려 있다"고 격려하며 총과 탄환, 군자금 등을 마련해 줬다. 참으로 깊은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오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지 105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 국민이 이날만큼이라도 안 의사의 나라사랑 정신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가 주창했던 동양평화론의 참의미를 되새겼으면 한다.

[김준혁 한신대 正祖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