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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 전주혁신도시로 이동할 지를 점검하라

신오덕 2015. 6. 5. 16:28
[매경데스크] 국민연금의 全州 이전을 보며
기사입력 2015.06.04 17:43:54 | 최종수정 2015.06.04 17:4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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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1일 저녁 전용기로 한국 도착→5월 12일 서울 국제행사 강연(오전)→국민연금 임원과 오찬→국내 대기업 CEO 면담(오후)→국민연금 관계자와 만찬→중국으로 출국(저녁).`

지난달 한국을 찾은 미국 최대 부동산 개발회사인 티시먼스파이어 오너 롭 스파이어의 일정이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울리히 쾨르너 UBS자산운용 회장의 지난달 한국 일정도 비슷하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글로벌 금융계 인사들은 대개 1박2일이나 하루 일정으로 서울에 잠시 머물다가 출국한다. 이들이 서울에서 빼놓지 않고 면담을 하려는 기관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다. 국민연금과 면담이 예약되지 않았다면 한국을 건너뛰고 중국이나 일본으로 곧바로 가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이런 풍경이 앞으로는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잠실에 있던 국민연금공단 본사가 지난 5월부터 전북 전주혁신도시로 이사를 시작해 다음주 마무리 짓고, 강남에 있는 기금운용본부도 내년 가을 전주로 옮길 계획이다.

한국을 찾는 글로벌 유력 인사들이 국민연금과 면담하기 위해 서울에서 왕복 6~7시간 소요되는 전주혁신도시까지 이동할지 의구심이 든다. 물론 국민연금 투자금을 받아내려는 곳은 아무리 멀더라도 찾아가겠지만 아쉬울 게 없는 글로벌 투자기관들은 아예 한국 방문 자체를 접을 가능성이 있다. `네트워크`가 중요한 금융업계에서 기금운용본부 임직원들은 글로벌 동향이나 투자정보에 소외될 우려가 많다.

국민연금의 지방 이전은 지역 정서를 내세운 정치권의 `주고받기식` 흥정의 산물이다. 당초 전북혁신도시에 입주하려던 토지공사가 주택공사와 통합돼 경남 진주로 이전하면서 이에 대한 보상으로 경남으로 옮기려던 국민연금이 방향을 튼 것이다. 2012년 대선 때는 전북 표심을 노린 대선 후보들이 기금운용본부까지 이전 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주장을 내놨다.

결국 2013년 6월 `국민연금공단의 주된 사무소 및 기금이사가 관장하는 부서의 소재지는 전라북도로 한다`고 규정한 국민연금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금융계에서 기금운용본부의 지방 이전을 우려하는 핵심 이유는 우수 인력의 유출이다. 벌써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지방행이 예정된 국민연금보다는 서울에 있는 한국투자공사(KIC)로 사람들이 몰린다. 내년에는 기존 인력의 이탈도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 등 민간 영역보다 급여가 낮은 데다 지방 근무까지 해야 한다면 `경력 쌓기나 사명감`만을 위해 남아 있을 직원이 얼마나 될까.

지난 4월 말 일본 의회는 137조엔의 공적연금을 굴리는 연금적립금관리운용 독립행정법인(GPIF) 본부를 도쿄 내에서 이전하기로 의결했다. 도쿄 시내에서 지방인 가나가와현으로 옮기려는 최초 계획을 전면 수정한 것이다. 가나가와현은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에 해당한다. 일본 정부는 오히려 이전 장소를 도쿄 금융중심지인 니혼바시로 바꿨다. 투자 전문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많이 알려진 얘기이지만 네덜란드 공적연금인 ABP는 지방도시 육성을 위해 1996년 탄광도시로 이사했다가 12년 만에 다시 수도인 암스테르담으로 들어왔다. 급변하는 글로벌 정보에 뒤처지면서 수익률이 급격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글로벌 연기금이나 국부펀드의 운용본부는 수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국민연금 운용자산은 올해 500조원, 2022년 1000조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익률을 1%포인트만 높여도 5조~10조원의 수입이 늘어나고 기금 고갈을 늦춰 다음 세대의 부담을 덜 수 있다.

현재 이전 계획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지역의 반발은 물론이고 국회 문턱이 높다. 국민연금법 개정의 열쇠를 쥔 보건복지위원장은 전북 출신의 김춘진 의원이, 복지위 야당 간사는 전주가 지역구인 김성주 의원이 맡고 있다.

최근 서울시가 국민연금을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 유치하기 위해 각종 혜택을 제시하며 뛰어들고 있다. 어설픈 접근이다. 이 문제는 서울과 지방이란 이분법보다는 국가 차원에서 결정되는 게 바람직하다. 지역보상책 등도 마련돼야 한다.

세종시 문제처럼 이번에도 `국익`과 `국토 균형발전`이란 이해가 충돌한다. `세종시의 폐해`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 차분하게 대안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김정욱 증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