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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철과 신념
발바닥이 손과 얼굴보다 하얀지 아는가 본문
직장인이 느끼는 스트레스 강도의 최고봉은 업무가 아니다. 대인 관계가 그 주인공이다. 업무는 실패해도 만회할 기회가 있지만 대인 관계는 한 번 엉클어지면 모든 게 뒤죽박죽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겉으론 하하허허 웃지만 사실은 견제하는 상사, 틈만 노리는 동료, 뒷통수를 치는 후배 등 만만치 않은 ‘관계 스트레스’가 곳곳에 잠복해 있다.
여름과 겨울을 다 겪어야 성장한다
사마의는 ‘삼국지’ 후반부에 등장한다. 그의 존재감은 엔딩으로 갈수록 더욱 무겁게 힘을 발휘하며 궁극의 순간에 모든 것을 거머쥔 최후의 승자가 된다. 사마의는 하내군 온현 효경리에서 사마방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형제는 모두 8명. 모두 뛰어난 수재들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사마의는 가장 촉망받는 기대주였다. 그는 당연히 각 제후들의 주목을 받았고 가장 먼저 조조의 부름을 받는다. 하지만 사마의는 불응한다. 원래부터 명문가였던 사마의는 환관 가문 출신인 조조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조조가 누구인가. 시대를 좌지우지 하는 간웅으로 머리 쓰는 일이라면 둘째가라면 서운한 존재. 조조는 사마의가 병을 핑계로 자신의 부름을 거절하자 사마의를 감시한다.
그 감시의 기간은 몇 년 동안 계속 되었다. 감시하는 조조나, 감시 당하는 사마의나 보통 사람은 아닌 관계로 몇 번의 위기와 기지 넘치는 위기 탈출의 순간들이 찾아온다. 한 번은 사마의가 평소 보던 책들을 거풍(햇빛 잘 들고 바람 부는 곳에 책을 놓고 말리는 것)하고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자 사마의는 감시를 잊고 무심결에 뛰어나가 책을 걷어 들였다. 그것을 사마의 집에 있던 여자 종이 본 것이다. 아차하는 심정이 들었던 사마의는 이 사실을 부인에게 이야기했고 부인은 곧바로 아무도 모르게 여종을 죽임으로써 위기를 모면했다. 어찌보면 잔인하고 무서운 성정이지만 그만큼 냉정한 절제력과 판단력이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또 한 번은 자객이 사마의를 찾았다. 자객은 칼을 들고 내리쳐서 사마의가 반항하면 죽이고 가만히 있으면 살려두라는 명령을 받았다. 자객이 사마의의 방에 몰래 들어가 칼을 빼어들고 내리치는 순간 사마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객은 칼을 멈추고 돌아가 조조에게 이 사실을 고했고 조조는 사마의가 풍이 있어 자신의 부름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몇 년 후 조조는 사마의를 다시 불렀고 이번마저 거절하면 힘든 상황이 올 것을 느낀 사마의는 조조의 참모로 들어간다. 조조는 애초부터 사마의의 재주는 높이 샀지만 인간적으로는 사마의를 믿지 않았다. 관직도 낮은 직책으로 주고 일도 하찮은 일을 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후계자가 될 조비에게 항상 “사마의는 낭고의 상(이리처럼 뒤돌아볼 때 몸은 안 돌아서고 고개만 돌리는 것)이라 믿으면 안 된다. 그는 절대 남의 밑에서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일렀다.
그러면서도 조조는 사마의를 자신의 아들인 조비의 휘하로 보냈다. 당시 조조는 조비와 조식 그리고 조창이라는 아들 셋 중에서 후계자를 결정하기 위해 고민 중이었다. 결국 조비로 후계자 자리는 정해졌다. 사마의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그는 조조의 눈을 피해 조비와 함께 일을 하면서 미래의 권력인 조비의 신임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조조와 조비의 의심을 풀기 위해 하급관리로 일하거나 심지어는 가축 기르는 일마저 마다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을 해 조조의 의심을 푸는 한편 조비의 두터운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후계자 결정전에서 사마의의 조언을 받은 조비는 훗날 왕위에 올라 사마의를 더욱 신임하게 되었다.
한편 조조는 항상 사마의를 제거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실행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촉의 제갈량이란 존재와 맞상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인재로 사마의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훗날 조 씨의 ‘위’가 사마 씨에게 멸문지화를 당하는 씨앗이 된다.
조조가 죽자 왕위에 오른 조비는 사마의에게 막중한 권한을 주면서 촉의 제갈량과 맞서게 한다. 사마의는 촉뿐이 아니라 위나라의 북쪽의 화근의 씨앗을 토벌하면서 조비의 충실한 부하가 된다. 조비가 “내가 동쪽에 있으면 그대는 서쪽에 있고 내가 서쪽에 있으면 그대는 동쪽에 있다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조비의 측근이 된다. 그리고 조비가 병으로 죽으면서 그의 아들 조예가 왕위에 오른다. 조비는 사마의를 조진, 진군, 조휴와 함께 조예를 받드는 보정대신으로 임명해 조예를 보좌하게 한다.
모든 공은 윗사람에게 돌려라
여기서 사마의의 처세학의 기본인 ‘자세를 낮추고 모든 공은 다른 사람에게 돌린다’가 빛을 발휘한다. 사마의는 조조의 친척 가문인 조진에게 승리의 모든 공을 돌렸다. 아울러 어떤 말이든 온화하게 하고 얼굴을 붉히지 않고 자극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 조진은 항상 사마의를 견제했다. 하지만 사마의는 조진과 맞서지 않았다. 모든 자리에서도 조진에게 상석을 양보했고 조그마한 공조차도 모두 조진에게 돌렸다. 한 번은 승전을 하고 고향을 찾은 사마의가 잔치를 벌였다. 술을 거나하게 먹은 사마의가 시 한 수를 지었는데 시의 내용이 그야말로 겸양의 표본이다. ‘성공하고 고향에 돌아와 나라와 왕께서 나를 처벌하기를 기다린다’는 내용이다. 그의 처세가 보통의 수준을 넘어선 것을 알 수 있다. 이쯤 되자 조진도 사마의의 처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갑자기 조진이 죽고 조예마저 병상에 드러눕는 위태로운 지경에 빠진다.
전쟁터에 나가있던 사마의는 조예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다. 조예는 위중한 가운데 자신의 아들인 조방을 부탁한다. 그때 조방의 나이는 불과 8세. 조예는 조진의 아들인 조상과 사마의에게 또 다시 위나라의 장래를 부탁한 것이다. 사마의는 조조, 조비, 조예를 잇는 3대의 위왕들로부터 후계자를 부탁받는 최측근 대신이 된 것이다.
당히 실세였던 조상은 사마의를 경계해 직급을 올려주는 대신 모든 병권을 빼앗았고 그를 24시간 감시했다. 위협을 느낀 사마의는 병을 핑계로 은퇴하곤 낙향했다. 그러면서도 아들인 사마소와 사마사에게 항상 겸손하라고 지시해 자식들의 벼슬만은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조상은 심복인 이승을 보내 사마의를 테스트했다. 이승은 형주자사로 가는 길이라며 사마의를 병문안 했지만 사마의는 말귀도 못 알아듣고 먹는 것은 다 질질 흘리는 흉내를 내며 이승의 눈을 속인다. 이승은 조상에게 돌아와 사마의는 이제 죽을 날만 남았다고 보고한다. 조상은 그 말을 믿고 사마의에 대한 의심을 거둔다.
어느 날 조상은 왕인 조방을 모시고 고평릉으로 갔는데, 그 순간 사마의는 아들들과 함께 측근 군대를 동원, 궁을 접수한다. 그리곤 ‘직급을 버리면 살려준다’며 조상을 회유해 조상 스스로 무장을 풀게 한다. 그리고 곧바로 누명을 씌워 조상과 그의 가족과 측근을 몰살, 권력을 장악한다. 이로써 위나라는 이제 사마 씨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72세에 사마의는 죽고 그의 아들을 이어 손자인 사마염이 서진을 세워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실리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모사꾼 이미지의 사마의이지만 그는 전장에서는 훌륭한 지휘관이었다. 그것은 사마의가 제갈량의 북벌을 무려 6번이나 막아낸 것으로 증명된다. 물론 모든 전투에 다 참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마의의 존재는 불세출의 귀재인 제갈량마저 좌절감에 빠지게 할 정도로 뛰어났다.
오장원에서 맞선 사마의와 제갈량. 위나라의 대군을 이끌고 온 사마의는 제갈량의 촉군에 비해 우세했지만 지구전을 감행했다. 사마의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제갈량은 초조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사신을 보냈다. 심지어 사신의 손에 여자 옷을 들려서 보냈다. 제갈량이 사마의에게 ‘아낙네처럼 웅크리고 앉아 나오지 않느냐. 나와서 일전을 겨루자’는 편지도 함께 보냈다. 체면을 중시하는 보통의 장수라면 크게 자존심이 상해 흥분해 뛰쳐나와 제갈량의 묘수에 걸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마의는 오히려 제갈량의 의도를 뛰어넘는 기지를 발휘했다.
촉의 사신에게 주연을 베풀며 제갈량의 동태를 살폈다. 사신은 “승상께서 장 10대 이상의 모든 일을 관장하시는데 먹는 것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취중진담을 발설함으로써 제갈량의 신상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흘리게 된다. 제갈량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사마의는 지구전을 지속한다. 결국 제갈량은 죽고 사마의는 자신의 최대의 라이벌의 마지막을 확인한다.
실리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사마의의 ‘자기 절제 처세학’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사마의는 또한 항상 스스로를 경계했다. 성공에 가까이 갈수록 위험도 가까이 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몸을 낮춘 것이다. 그는 자신을 이해하는 분별력, 그리고 자신의 단점을 이해하는 용기가 진정으로 남자에게는 필요한 것이라고 설파했다.
우화가 있다. 한 소년이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100원 짜리와 50원짜리 동전을 주며 하나를 가지라 하면 소년은 항상 50원짜리를 선택했다. 사람들은 소년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하지만 소년의 선택은 더 현명한 것이다. 소년은 “내가 100원짜리를 선택하면 앞으로 50원짜리를 계속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당장의 이익과 성과의 유혹에 휩싸이는 것보다 지속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한 단계씩 성장할 수 있는 끈기와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사마의는 물론 4대에 걸쳐 조 씨의 위나라를 위해 봉사했지만 결국 자신의 손자가 황제가 되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보스의 눈에 거슬리지 않게 현명한 선택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누구보다 무서운 눈을 가진 조조를 뛰어넘어 조비, 조예에게 신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무서운 절제의 힘 덕분이다.
사마의는 어떤 장소에서, 어떤 사람과, 어떤 상황에서도 조조나 조비의 욕이나 단점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마음을 100% 알아채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무모한 짓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조조가 시행했던 수많은 테스트를 통과한 것이다. 한번은 조조가 사마의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경은 왜 발바닥이 손과 얼굴보다 하얀지 아는가?” 사마의는 당연히 모른다 말했고 조조는 “그것은 항상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사마의의 속내가 다른 사람을 충분히 속일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한 발언이었다. 이런 말을 듣고도 사마의는 단 한 번도 조조에게 책을 잡히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사마의는 후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칼과 창을 보면 날카로운 부분이 쉽게 마모된다. 그 이유는 남을 베고 찌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자신도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조직에서 핵심인력이라는 인재들이 그 누구보다 가장 상처받기 쉽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조직의 핵심 인력은 항상 많은 일을 그리고 두드러지는 일을 하기 마련이다. 공도 클 수 있지만 무엇보다 실패의 쓰라림도 최전선에서 먼저 맞기 때문이다. 사마의는 항상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움직일 때는 누구보다 먼저 과감하게 움직였다. 그의 쿠데타가 불과 3000명의 병력으로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과감성과 결단력 그리고 핵심을 장악하는 전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직장인이 사마의의 처세학에 배울 수 있는 것은 한 마디로 ‘때를 기다리자’이다. 물론 전제 조건이 따른다. 그것은 ‘실력을 겸비하면서’이다. 직장생활은 기다림의 연속일 수 있다. 결과를 기다리고, 지시를 기다리고, 승진도 기다리고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 자신의 능력의 최대치가 과연 이 직장에서 어떤 정도일 수 있나를 가늠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고민한다. 계속 갈 것인가, 이직할 것인가, 아니면 사표 내고 다른 것을 할 것인가를. 그 어떤 것도 정답은 없다. 하지만 사표를 내는 것은 승부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직하는 것은 새로운 전쟁터로 옮기는 것뿐이다. 계속 가되 어떻게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어떻게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사마의는 보여주었다.
사마의의 처세는 조금은 비굴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후손이 중원을 통일해 진나라를 세운 결과의 기본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작은 재주를 빛나게 닦아 큰 재주로 만들어 적을 만드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이여,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자리가 빛나 보이고 성공이 눈 앞에 다가온다고 느낄 때 한걸음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래야 당신의 그 한 순간이 결승점을 통과하는 다른 동료의 등을 보는 결과를 빚어낸다 하더라도 다음 경기의 승자는 당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포토파크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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