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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정석담의 구서를 알고 배워라

신오덕 2015. 7. 2. 13:51

[강명관의 심심한 책읽기]독서 달인의 비법

강명관 |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2015년 6월 26일

 

18세기의 최고의 다독가, 애서가였던 이덕무의 책 빌리기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세정석담(歲精惜譚)>에서 이덕무는 이렇게 말한다.

“만권(萬卷)의 책을 쌓아두고도 빌려주지도 읽지도 햇볕에 쪼여 말리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 하자. 빌려주지 않는 것은 어질지 못한 것이고, 읽지 않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고, 햇볕에 쪼여 말리지 않는 것은 부지런하지 못한 것이다. 군자가 반드시 독서를 해야만 하는 법이니, 빌려서라도 읽는 것이다. 책을 묶어두고 읽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

어떤가. 선비는 책을 읽어야 하는 사람이고, 책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읽어야 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책을 쌓아두고도 읽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남에게 빌려주지도 않는 법이다. 책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빌려주는 것도 아는 법이다.

이렇듯 책 빌리기에 일가견(?)이 있는 이덕무였으니, 자연 자신에게 책을 빌려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숱하게 남기고 있다. 그는 이서구(李書九)에게 보내는 편지를 여러 통 남기고 있는데, 모두 책에 관련된 이야기다. 이덕무가 1741년생이고, 이서구가 1754년생이니 나이는 열세 살 차이가 난다. 하지만 둘은 친구처럼 지냈다.

첫 번째 편지에서 이덕무는 이서구가 자신의 장서를 자필로 교정하고 평점해 달라고 부탁한 데 대해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기뻤다고 말한다. 이덕무는 18, 19세에 자신이 살던 집을 ‘구서재(九書齋)’라고 했는데,

 

구서란 독서·간서(看書)·장서(藏書)·초서(초書)·교서(校書)·평서(評書)·저서(著書)·차서(借書)·폭서(曝書) 등 아홉 가지를 가리키는 것이라 한다.

 

독서는 물론 책 읽기, 간서는 책 보기다.

 

책 보기는 내용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보는 것이다.

 

장서는 책을 소장하는 것,

 

초서는 책을 읽으면 내용을 뽑아 적는 것,

 

교서는 책을 교정하는 것,

 

평서는 책을 평하는 것,

 

저서는 책의 저술,

 

차서는 책 빌리기,

 

폭서는 책을 햇볕에 쬐는 것이다.

 

그런데 ‘구서(九書)’는 이서구의 이름 ‘서구(書九)’를 뒤집은 것이 아닌가. 이덕무는 10년 뒤 구서재가 이서구와 연결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한다. 이때 이덕무의 나이 28, 29세, 이서구는 15, 16세다. 참으로 조숙한 독서가들이다.

이서구의 부탁 편지를 받았을 때는 아마도 새해였던 모양이다. “또 새해가 되었으니 족하는 많은 기서(奇書)를 얻어 지혜와 식견이 날로 진보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한가롭고 병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창에 비치는 햇살이 늘 선명하고 밤에는 등불이 환하지요.” 좋은 책을 얻어 지혜와 지식이 날로 진보하기를 바란단다. 요즘은 찾아볼 수 없는 덕담이다! 훌륭하구나.


이어지는 두 번째 편지는 저 유명한 책을 팔아먹은 이야기다.

자신의 집에 돈이 나갈 만한 가장 괜찮은 물건은 <맹자> 7책인데,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돈 2백 푼에 팔아 밥을 해먹고 ‘희희낙락’ 유득공을 찾아가 자랑을 했더니, 유득공 역시 오랫동안 굶주린 끝에 <좌씨전>을 팔아 술을 사다가 둘이 마신 이야기를 한다. 맹자와 좌구명이 밥과 술을 사준 것이라면서 둘은 맹씨와 좌씨를 한없이 칭송했다. 유쾌한데, 어찌 좀 서글프게 유쾌하다.

이덕무는 다독하는 자신을 나무라기도 한다. “예전에 책을 빌려 내쳐 읽는 사람을 보고 나는 그가 너무 애를 쓴다고 비웃었는데, 이제 어느 결에 나도 그 사람을 닮아 눈은 어둡고 손은 굳은살이 박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란 정말 제 주제를 모르는 법이지요.” 남에게 책을 빌려 바지런히 읽는 사람을 비웃었는데, 자신 역시 어느 결에 책을 빌려 읽느라 눈은 어두워지고 책을 베끼느라 손에 굳은살이 박이게 되었단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책을 빌리고 또 빌려준다.

“내 학자는 아니지만 늘 <근사록(近思錄)>을 애중하여 항상 몸 가까이 밤낮으로 서너 조목씩 보면서 몰래 자신을 반성하는 터라 잠시라도 손에서 떼어놓고 싶지 않소이다. 하지만 족하의 청을 어떻게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모두 9책을 삼가 보냅니다. 다만 이 책을 보내고 나면 내가 눈을 댈 책이 없으니, <원문류(元文類)> 아니면 <송시초(宋詩抄)> 둘 중에서 하나를 빌려주심이 어떨지요?

“<일지록(日知錄)>을 3년 동안 고심참담 애써 구하다가 이제야 비로소 어떤 이의 비장한 것을 읽어보았더니, 육예(六藝)의 글과 백왕(百王)의 제도와 당세의 일에 고증해 밝힌 것이 명확했습니다. 아, 고영인(顧寧人, 寧人은 顧炎武의 자)은 진정 옛날의 큰 선비라 할 만합니다. 돌아보건대, 지금 세상에 족하가 아니면 누가 이 책을 읽을 수 있겠습니까? 또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책을 초하겠습니까? 4책을 우선 보내니 보물처럼 보심이 어떨지요. 전에 보내준 작은 공책은 이미 다 썼습니다. 족하는 계속 공책을 보내어주셔서 나의 책을 초하는 일을 끝을 맺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린 이서구지만 이덕무는 이렇게 정중하다. 이것 외에도 빌려달라고 하는 책이 잔뜩 있다. 이서구의 집안은 워낙 명문이니 가난한 서파 이덕무와는 달리 책이 많았던 것이다. 이덕무는 이서구에게 책 빌리는 데 좀 넉넉해지기를 바라기도 한다. 옛날 송준길(宋浚吉)이 남에게 읽으라며 책을 빌려주고 돌려받았을 때 책에 보풀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곧 책을 읽은 흔적이 없으면, 다시 주면서 읽으라 했는데, 어떤 못된 젊은이가 책을 빌렸다가 돌려줄 때 혼이 날까 하여 책을 밟고 문질러 읽은 것처럼 꾸며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면서 자신은 그런 못된 젊은이가 아니니, 송준길을 본받아 자신에게 책 인심을 넉넉하게 쓸 것을 부탁하고 있다. 과연 이덕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