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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 주총을 지켜보아라

신오덕 2015. 7. 15. 12:58
[김세형 칼럼] 미국도 위기 땐 기업 편들었다
기사입력 2015.07.14 17:20:30 | 최종수정 2015.07.14 17:2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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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주총이 이틀 후로 다가왔다. 삼성 측과 엘리엇펀드 측의 승부 전망은 박빙이라 한다. 어떤 결론이 나느냐에 따라 향후 한국 자본주의의 명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떤 일에는 합리성 혹은 부분만으로 따지기 어려운 그 무엇이 있다. 베테랑의 직관은 이럴 때 좋은 팁(tip)을 준다. 그래서 이번 합병논쟁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이규성, 강봉균, 이헌재, 윤증현, 강만수, 정덕구 전 장관 등의 견해를 들어봤다. 관점의 차이는 있었지만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는 "미국도 비상시에는 자기 기업편"이라는 것.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 재무장관을 역임했던 티머시 가이트너는 `스트레스 테스트`라는 최근 펴낸 책에서 위기 수습국면을 생생하게 기술하고 있다. 특히 보험회사인 AIG를 구한 경위는 한 편의 전쟁서사시 같았다. 미국, 그 밖에 세계 170개국 AIG 가입자들이 연루된 자금은 4000억달러가 넘으며 회사가 쓰러지면 제2차 대공황이 온다고 가이트너는 확신했다. 마침내 연준(Fed) 돈 850억달러를 AIG에 투입해 살리고 내친김에 나머지 4대 금융 폭탄이었던 씨티, 패니메이 프레디맥, BOA에 구원의 밧줄을 내린다. 미국 자동차산업의 대명사이자 150만명의 일자리가 걸린 GM을 구하기 위해 495억달러를 지원했다. 작년에 GM구제금융을 결산하면서 결국 112억달러(약 12조원)의 손실을 보고 말았다. 긴급재정자금은 국산품만 사도록 했다. 미국도 급하면 이렇게 일을 처리한다. 기억을 더듬으면 금융위기 때 유럽의 런던, 파리, 베를린에서는 "이민자들은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폭동이 있었다. 비상시엔 국경이 높은 법이다.

삼성과 엘리엇펀드의 대치는 단순하게 압축해서 보면 헤지펀드가 삼성의 후계구도 과정에서 한몫 잡자고 뛰어든 사건에 불과하다. 한국은 여러 그룹이 3세 승계의 전환기이고 이번 삼성이 제1 시험대가 된 것이다. 1선이 뚫려 헤지펀드가 승리의 나팔을 불면 더 많은 헤지펀드들이 몰려들어 한국 재계를 뒤흔들 것이다. 삼성보다 약한 2, 3선은 더욱 손쉬운 상대가 될 것이다. 금융위기 때 Fed 내 최고 경제학자 켄 가베이드는 "미국 금융사들은 한 줄로 쌓아놓은 계란처럼 위태롭다"고 했는데 지금 한국 재벌의 거버넌스가 그 상황에 처했다.

그럼 삼성계열 합병 관련 국민연금의 찬성 논리는 무엇이고 ISS의 반대 논리와 차이는 뭔가.

국민연금의 삼성계열 주식 투자총액은 23조원이며, 국민연금 전체 주식 포트폴리오의 4분의 1이다. 국민연금은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지만 동시에 연금가입자(국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따라서 큰 구도에서의 이익의 극대화가 이번 찬성의 논리다. 여기에 국내 최고 연금기관으로서의 역할론의 근거가 있다.

이에 비해 ISS는 개별주주 이익의 극대가 목적이다. 사실 ISS는 사모펀드 베스타(Vesta)가 운용하는 회사이고 기업사냥꾼의 논리와 닿아 있다. ISS는 제일모직 주주엔 찬성, 삼성물산 주주엔 반대 의견을 권유해 숨은 속내를 드러냈다.

우리는 과거 헤지펀드들이 몇몇 금융사를 사들여 직원, 점포를 줄여 억지로 만든 이익을 몽땅 빼먹고 철수한 사실을 알고 있다. 노인 어부의 수확물이 상어떼에게 홀랑 뜯긴 것처럼. 한국의 기업구조는 미국 유럽 일본에 비해 재벌가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이런 구조는 개발연대에는 창업자의 열정으로 타오를 때 한국을 단번에 선진국까지 끌어올린 압축성장의 원천이었다. 그런데 3, 4세 체제로 가면서 승계작업을 포함해 한국 경제의 다이내믹 저하 등 고민이 큰 것이 사실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경영권 보호 장치는 미국 영국에 비해 너무 취약하다. 심지어 구글(Google)조차도 일반인의 10배 의결권을 가진 초의결권주가 있고 뉴욕타임스에는 황금주가 있다. 증권시장 측면에서도 캐나다는 매입한 지 2년이 안 된 헤지펀드주는 의결권을 주지 않고, 일본 도요타도 특별한 주식 발행을 최근 시작했다.

이번 삼성계열의 합병 주총 후 한국 자본주의는 여러 가지로 바뀔 것 같다. 삼성 측은 거버넌스위원회 설치, 배당률 상향, 기업이익의 0.5% 이상 사회공헌 등 기업의 공적 역할을 약속했다. 큰 변화다. 지금 삼성 합병 주총에서 문제는 한 줄로 쌓은 계란더미가 쓰러지지 않는 일이다. 그리스의 처참한 담판에서 보듯 지금 이 순간에도 국경은 높다.

[김세형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