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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를 아는 자는 성공한다

신오덕 2015. 7. 17. 10:59
[기고] `제자리`를 지킨 숨은 영웅들
기사입력 2015.07.16 17:41:29 | 최종수정 2015.07.16 17:4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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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재난과 재해를 극복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제자리`를 잘 지켰느냐, 지키지 않았느냐 하는 점에서 피해의 규모와 사회적 파장, 극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결정된다. 세월호가 그랬다. 그리고 재난 극복 과정에서는 항상 `제자리`를 지킨 사람들이 위기 극복의 주춧돌이 된다.

얼마 전 광주광역시에서 하수구를 막은 쓰레기를 치운 한 고등학생이 SNS상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학원 가는 길에 도로가 침수된 걸 보고 손으로 하수구의 쓰레기를 빼냈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실천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사람들은 그 학생을 영웅에 비유했다. 제자리를 지킨 시민의식에 감동한 것이다.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메르스 사태가 잦아들고 있다. 한때 진원지로 지목됐던 경기도 평택의 경우 한창 때 1058명이던 자가격리자가 마침내 0명을 기록했다. 메르스가 더 크게 확산되는 것을 막고 진정 국면으로 접어든 데는 숨어 있는 영웅들의 힘이 컸다.

적어도 다음 셋은 진정한 숨은 영웅들이다.

첫 번째 영웅은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이다. 확진환자 186명 중 21%인 39명이 의료인이었는데, 이분들은 멋모르고 당한 환자와 다르다. 메르스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환자를 돌봐야 한다는 사명감에 치료에 뛰어들었다가 감염된 분들이기 때문이다. 혹시 가족이 감염될까봐 집에도 못 들어가고 치료에만 매진한 분들이다.

두 번째 영웅은 확진환자가 입원한 병원 주변에 사는 시민들이다. 여느 때처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님비 현상이 나타났다면 확진환자의 입원을 막겠다는 시위가 일어날 법도 했다. 그러나 병원 주변 시민들이 환자와 의료진을 격려하는 성숙한 행동을 보여준 것이다.

경기도의 경우 전국 최초로 확진환자와 일반 발열환자를 분리 수용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러나 확진환자를 수용한 수원 도립의료원 주변 정자동 시민들은 님비 현상은커녕 환자와 의료진을 격려하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힘내세요 의료인 여러분, 우리가 늘 함께합니다." "진정 당신이 애국자입니다. 사랑합니다."

세 번째 영웅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킨 공무원들이다. 자가격리된 분들에게 누군가는 쌀과 물, 반찬, 화장지 등을 공급해야 했다. 가족이라도 감염 우려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을 묵묵히 해낸 것이 지방자치단체에 근무하는 일선 공무원들이다. 혹시 모를 감염 위험에도 불구하고 마스크 하나를 방패 삼아 자가격리자의 집을 일일이 방문하면서 생필품을 전달해온 것이다.

극적인 예가 구리 카이저병원이다. 카이저병원은 9층짜리 대형 건물의 6층과 7층을 차지하고 있다. 건국대병원에서 감염된 확진환자 한 분이 이 건물 복도를 거쳐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원을 방문했고 재활 치료를 위해 입원했다가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 때문에 이 큰 건물 전체가 폐쇄됐다. 확진환자를 보라매병원으로 이송한 뒤 건물 전체 소독이 불가피했다. 민간 방역 업체에 소독을 의뢰했지만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건물이 워낙 큰 데다 감염 위험까지 겹쳐 업체들도 기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나선 것이 구리시 공무원들이다. 구리시 600여 공무원 중 임신부, 장애인, 5세 이하 아이가 있는 여직원을 제외한 380명의 직원이 직접 건물 소독에 나선 것이다. 방호복을 입은 부시장의 진두지휘 아래 꼬박 사흘간을 매달려 소독을 끝낼 수 있었다.

우리는 메르스 사태를 통해 흔들림 없이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큰 힘이라는 점을 배웠다. 위기는 늘 가까이 있다가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그리고 그 위기에서 숨은 영웅들이 탄생한다. 어쩌면 국민은 의료인, 성숙한 시민, 그리고 메르스 현장에 투입된 공무원의 노고를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 알아줘도 혹은 몰라주더라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숨은 영웅들이 있기에 오늘도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가 잘 굴러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박수영 경기도 행정1부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