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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열기가 고스란히 온몸으로 온다

신오덕 2015. 7. 24. 12:21
[세상읽기] 기찻길 옆 주민들의 아우성
기사입력 2015.07.22 17:25:33 | 최종수정 2015.07.22 19:5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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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소음과 전쟁 탓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다. 한여름이라도 엔간한 날씨엔 창만 하나 열어도 살 만한 부산이지만, 요즘 도무지 창을 열 수 없어 한밤의 열기에 고스란히 온몸으로 맞서야 한다. 식구마다 선풍기 한 대씩 끌어안아도 소용없다. 뒤척이다가 거실로 나와 창을 활짝 열어젖힌다. 시원한 바람이 이내 내 가슴속으로 덥석 안긴다. 그 시원하고 상쾌함에 온몸이 짜릿하다. 진작 거실 창을 열어둘걸, 했는데 아니다. 끼이익! 쇳덩이와 쇳덩이가 부딪치면서 내는 파열음이 일순간에 숙면에 대한 기대를 날려버린다. 반세기 동안 감내해온 일로 이제 일상화됐다. 앞으로 기차 통행량이 더 늘고, 차량 속도도 더 빨라진다니…. 이제야말로 삶터를 떠야 하나.

이처럼 철도 소음·진동으로 엄청 고통에 시달리고 있던 부산 도심의 부산진구 서면 일대 주민들이 단단히 뿔났다. 몇 해 전부터 소리 없이 추진하던 `경전선 복선전철화 사업`이 `KTX 사업`이라는 게 알려져서다. 주민들은 지금까지 이 사업을 부산과 마산 간 통근열차 노선쯤으로 여겨왔다. 이 노선은 기존 경전선 노선인 삼랑진∼진례 구간 대신에 `부전∼사상∼장유∼창원중앙∼마산역`으로 직선화된다, 개통되면 기존 경전선에 비해 운행 시간이 단축된다, 일반 열차는 물론 통근형 전동차도 운행하므로 마산·창원 등에서 부산 방면으로 이동하기가 매우 편리해진다는 당국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한데 부산 서면 주민들이 경전선 복선전철 관련 민원 대책모임을 하던 지난 6월 말 같은 날 광주시에서도 `경전선 광주∼순천 간 복선전철화 가능한가`를 놓고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광주 송정∼순천 간 철도노선이 복선 전철화되면 광주에서 부산까지 2시간이면 갈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토론회에 참석한 광주 지역 전문가들은 "경전선 고속철도사업은 광주를 호남권 중심도시로 견인함과 동시에 미래 철도 경쟁력 관점에서 노선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단다. 똑같은 날 부산 서면의 한 음식점에 모인 주민들 입에서 나온 `통근열차`가 광주에서는 `국가 미래 성장 동력의 하나인 KTX`로 격상되는 순간이었다. KTX의 서면 도심지 지상 통과로 인한 진동과 소음 불편은 불을 보듯 뻔하다.

`기찻길 옆`에 사는 부산 서면 주민들은 철도당국에 항의공문을 보내고, 동네 곳곳에 `KTX 도심 지상 통과`를 반대하는 플래카드도 내걸었다. 가가호호 반대서명은 물론 서면역 등 도심 지하철역이나 상가 등을 돌며 시민들에게 동참을 촉구하고 나섰다. 서면 주민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딱 하나. 철길 옆도 사람 사는 곳으로 대접해 달라는 거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천성산 도롱뇽보다 더 못한 존재란 말이냐"는 항변도 나오고 있다. 2000년대 초반 한 스님이 천성산 밑을 뚫는 경부선 KTX 터널공사로 인해 이곳 습지에 사는 도롱뇽이 사라질 것이라며 법정투쟁을 벌인 걸 염두에 둔 게다. 100년 전에 건설한 기존 철도는 분명 작은 포구에 불과한 부산을 대한민국 제2의 도시로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하지만 그 철도가 이제 도심 발전을 가로막는 흉물이 된 지 오래다. 부산 부산진구 부암동 서면중학교 일대는 세 갈래 철로에 갇혀 불이 나도 소방차 접근이 불가능해 주민들은 매일같이 불안에 떨고 산다. 이 탓에 부산 번화가인 서면교차로와 불과 600m도 떨어져 있지 않은 이곳은 도심 속 슬럼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새로운 도심지 철도는 적어도 부산의 미래 100년을 내다보고 건설돼야 한다는 주민들 절규에 당국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찻길 옆 서면 도심 주민들의 아우성이 철도 소음보다 더 커져서야 되겠는가. 부산 서면 주민들의 `도심철도 지하화 요구` 목소리는 지나치게 경제성만 따지기에 앞서 삶의 질을 우선시하라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허용 기준치`에 해당할 뿐이다.

[정근 대한결핵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