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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사람을 찾아라

신오덕 2015. 7. 28.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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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춘추] K여사 이야기
기사입력 2015.07.27 17:36:03 | 최종수정 2015.07.27 17: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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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법원에 이름난 `블랙컨슈머` 할머니가 한 분 있다. 옛날에 경매로 집이 넘어간 딱한 사정이 있다. 경매된 집을 되찾을 길이 없자 자신의 사건에 관여한 모든 사람을 고소, 고발하고 대법원까지 가서 1인 시위를 하는 전국구다.

거의 날마다 출근하다시피 검찰청에 들러서 법원으로 온다. 날마다 오니 누가 누군지 직책까지 다 안다. 엄청난 목소리와 육두문자로 무장하고 있다. 매일 소리를 지르다 보니 목소리가 탁 트여 굳이 스피커가 필요 없다. 성씨 뒤에 여사를 붙여 K여사라 부른다. 밥도 공짜다. 구내식당 아줌마들과 시비하는 것을 보다 못해 직원들이 자기 식권을 한 장씩 준다. 아무 사무실이나 쳐들어가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니 건장한 공익요원을 감시자로 붙인다. 그러면 다니면서 내 경호원이라고 자랑한다.

내 자랑이지만 이분이 필자에게는 잘한다. 처음부터 잘한 것은 아니다. 필자가 부산고법에 근무하던 어느 날, 갑자기 퍼붓던 소나기 때문에 `퇴근`을 못 하고 있던 K여사에게 필자가 들고 가던 우산을 준 다음부터이다. 다음날 무슨 행패나 부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직원들을 뒤로하고 판사실에 찾아와 우산을 돌려주면서 "어제 저녁 부장님 덕택에 비 안 맞고 집에 갔다"고 내 손을 잡고 웃으면서 치사를 하였다. 다들 K여사가 그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고 한다. 어떻게 그분께 우산을 줄 생각을 다했느냐고 사람들이 물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인생 참 별거 아닌데….

블랙컨슈머 간에도 서열이 있다. 넘버1인 K여사는 다른 이가 법원에 와서 행패 부리는 꼴을 두고 보지 못한다. 그래서 넘버2인 아주머니도 널리 알려진 강적이지만 K여사가 있을 때는 그냥 `법원 견학`만 해야 한다.

골칫덩이인 이분이 법원을 위하여 큰 활약을 한 적이 있다. 모 금융기관 부도사건 피해자들이 데모를 하러 부산법원 종합민원실 앞까지 몰려왔을 때다. 법원 당국은 경찰을 투입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심 중이었다. 이때 K여사가 홀연히 나타나서는 "이것들이 어디 감히 법원에 와서 행패를 부리느냐"고 육두문자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시위대가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쫓겨났다고 한다. 자주 출입하다 보니 생긴 법원에 대한 애정의 표현일까? 아니면 여기는 내 `나와바리`라는 영역의식의 발로일까? K여사가 한동안 보이지 않으면 속 시원해하다가 좀 더 지나면 어디 몸이라도 편찮으신가 하고 궁금해한다. 이것도 무슨 스톡홀름증후군의 일종인가. 어쨌든, 건강하세요. 자주 오시는 건 어쩔 수 없는데 육두문자는 참으시고요. 목소리도 좀 낮추시고요. 시위대 쫓아내주었다고 그러는 건 절대 아닙니다.

[최인석 부산가정법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