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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이 부러워하는 현상을 점검하라

신오덕 2015. 8. 6. 13:11
[매경춘추] 과로 법원
기사입력 2015.08.04 17:56:56 | 최종수정 2015.08.04 17:5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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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이상한 곳이다. 호경기에도 사건이 늘어나고 불경기에도 사건이 늘어난다. 경제인들이 부러워하는 현상이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은 직위가 높아질수록 일이 많아진다. 다른 이들이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이다. 법원에 소송이 가장 폭주하던 시기는 IMF 외환위기 시절이었다. 사건이 그야말로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야근은 예사이고 자정을 넘겨서 재판한 것도 나중에는 큰 화젯거리가 못 되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지금이 그때보다 사건이 더 많다.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계속 늘고 있다. 법원장이나 수석부장을 맡고 있으면 문안인사 차 대법관실을 방문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웬만해서는 차 한 잔 얻어 마시기가 어렵다. 바빠서 앉으라고 권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대놓고 말씀하신다. 충분히 이해한다. 사무실 곳곳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기록을 보면 솔직히 앉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다. 대법관이 된 후 급격하게 노화가 진행되는 분을 여럿 보았다. 취임하는 날보다 퇴임하는 날이 더 좋더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필자는 조용필 씨가 부른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좋아한다. 그곳에 다녀올 때마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있는 내 청춘에 건배"라는 가사가 생각난다. 하기야 내 신세도 별반 다를 바 없다.

대법관이 그러하니 보좌하는 판사들도 마찬가지다. 월화수목금금금이다. 더 이상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무슨 대책이 있어야 한다.

대법원의 또 다른 문제는 최고법원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사건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으로는 대법원이 이 나라 인권과 법치주의의 방향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최고 법원의 역할과 적정한 업무량 유지를 위하여 채택하고 있는 방법은 상고허가제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다수는 상고허가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방안으로 내놓은 것이 상고법원이다. 완전하지는 않으나 현재로서는 최선책이다. 대법관 수를 늘리자는 분도 있다. 그 방법으로 업무경감은 가능하겠지만 최고 법원의 역할은 기대할 수 없다. 대법관 증원은 상고허가제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 상고허가제의 대체재는 상고법원이다. 이제 대법원 청사에도 밤에는 불을 끄고 그들을 가족 곁으로 돌려보내줄 때가 되었다.

[최인석 부산가정법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