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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그룹의 존재감은 흥미로운 소재이다

신오덕 2015. 8. 7. 09:48
[기고] 롯데家 분쟁, 대기업 전체 매도로 번져선 안돼
기사입력 2015.08.06 17:16:12 | 최종수정 2015.08.06 17: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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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롯데가 세간의 관심사다. 매일 반전을 거듭하는 극적인 에피소드에 재계 5위 재벌그룹의 존재감도 흥미로운 소재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기화로 불필요하게 롯데나 총수 일가에 대한 가십들이 파헤쳐지거나 재계의 문제로 일반화하는 시각은 위험하다.

한 소장 경영학자는 "기업을 사유물로 보는 시각 탓에 그룹의 지배구조가 망가졌고, 이 때문에 이번 상속 분쟁이 생겼다"고 말했다. 지배구조 탓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것도 지나친 일반화에 가깝다. 사안의 본질은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경영자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진통 아닐까. 또 재벌기업의 순환출자 문제라든가 총수가 적은 지분으로 그룹을 경영하는 지분구조의 문제로 보는 시각도 지나치다.

문제의 본질도 아니거니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수록 총수의 지분이 적어지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소설가 복거일 씨는 이를 두고 이렇게 설명했다.

"창업자는 기업이 자기 것이 되리라 믿고 기업을 세운다. 기업이 자라나면 외부 투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창업자의 지분은 점차 줄어든다. 그 과정에서 창업자를 믿는 투자자들은 투자를 계속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투자자들은 주식을 팔고 떠난다. 기업의 지배구조는 정치 체제가 아니다."

혹자는 투명경영을 이야기하지만 우리나라 대기업만큼 공시를 잘하고 있는 기업도 드문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롯데 이슈가 불거진 이후 조명된 일본 광윤사 등에 대해 알려진 정보가 없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우리나라는 상호출자제한제도를 적용받는 대기업집단의 공시 의무가 엄격하게 실행되고 있다. 정부가 공시 사이트까지 운영하고 있어 상장회사든 비상장회사든 대기업 실적 정보부터 출자 정보, 내부 지분율, 의결권 승수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내용이 국민에게 공개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다르다. 비상장회사 등에 대해선 공시를 강제하지 않는다. 회사와 주주의 문제이지 모두가 알아야 할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만큼 우리 기업들은 제도적으로도 투명경영을 실천할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롯데가 일본 기업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감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안타깝다. 우리 기업들 역시 대세에 따라 글로벌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만큼 이제 와 롯데가 일본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고 비난하는 논리는 제 살 깎아먹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 중국 삼성전자 베이징 본사. 여기에 다니는 근로자나 지역민, 미국이나 중국 국민 어느 누구도 한국 기업인지를 따지지 않는다. 한국에 설립한 외국 기업에 대해서도 우리 역시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대한해협의 경영자`라 불린다. 홀수 달에는 한국, 짝수 달에는 일본에 머물며 그룹을 경영하면서 붙은 별명이다. 한·일 수교 50주년인 올해 오히려 양국 경제 관계가 깊어지는 데 기여해온 롯데의 공을 되짚어보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우리 경제 상황을 볼 때 가장 큰 고민거리는 `산업절벽`이다. 기업들의 2분기 어닝 쇼크가 이어지고 있지만, 단기적인 상황이 아닌 듯하다. 주력 산업으로 분류되는 휴대폰 등 정보통신기기나 가전, 자동차 등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연구들도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일본과는 여전히 간극이 크고 중국에는 빠르게 추월당하는 `넛크래커` 형국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처럼 우리도 한 해 두 해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산업절벽뿐만 아니라 지난 6월을 기준으로 체감 청년실업률이 23%인 고용절벽 역시 국가적 사안이다. 경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노동 시장 개혁 등 4대 부문 구조개혁 역시 강력한 드라이브를 통해 실마리를 찾아야 할 때다.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번 롯데 경영자 선정 과정에서 나온 잡음들이 매끄럽지 않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재벌이라서 문제라거나 이참에 재벌을 손봐줘야 한다는 건 국민 감정에 편승한 포퓰리즘이 될 공산이 크다. 어려운 경제 현안이 산적한 만큼 모두가 냉정을 찾아야 한다. 지금 18만 롯데 직원을 불안하게 하는 건 우리 모두가 아닐까.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