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철과 신념

자본 시장의 시각으로 다시 살펴라 본문

부자

자본 시장의 시각으로 다시 살펴라

신오덕 2015. 8. 7. 09:13
[매경데스크] 엘리엇 이후 삼성 금융의 갈 길
기사입력 2015.08.06 17:22:01 | 최종수정 2015.08.06 19:37:45
보내기

 

1990년대 중반 삼성그룹의 자동차산업 진출과 관련해 논란이 있었다. 당시 기아차 등 자동차업체의 반대 논리 중 하나. `우리는 삼성차와 경쟁해야 하는 게 아니다. 삼성생명과 싸워야 한다.` 삼성생명의 막강한 자금력을 의식한 주장이었다.

삼성전자가 도약하기 전까지 삼성 금융계열사들은 그룹의 재정적 버팀목으로 여겨졌다. 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 숱한 대기업들이 무너졌어도 삼성은 굳건히 버텼다.

2000년대 들어 반도체와 스마트폰 호황으로 삼성전자가 대규모 이익을 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금융계열사들의 그룹 내 위상은 축소됐다.

카드는 신용카드 대란, 증권은 해외진출 실패, 생명은 금리역마진으로 고통을 겪었다. 혹독한 구조조정도 실시됐다. 금융가에선 `삼성에는 삼성전자와 삼성후자, 그리고 삼성서자가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후자는 전자를 제외한 제조 계열사를, 서자는 금융 계열사를 의미한다.

삼성전자가 연간 20조~30조원의 순익을 내면서 `전자 DNA` 전파작업이 이어졌다. 전자의 경영방식과 인재를 계열사에 심자는 것이다. 전자 출신 임직원들이 대거 다른 계열사 요직을 차지했다. 일부 금융회사에 대한 인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금융 경험이 없는 인사를 최고경영자(CEO)에 임명해도 금융당국조차 오랫동안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CEO란 직책은 금융시장을 몰라도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 더 낫다`란 논리가 우세했다.

다행히 현재 삼성 금융계열사에는 금융전문가들이 많았다. 증권 보험 등 곳곳에는 삼성 출신들이 포진하고 있다. 각 업권에서 생명과 화재는 독보적인 1위이며, 증권과 자산운용도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유독 그룹 내부에서는 그런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이런 금융계열사들이 엘리엇 사태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극비리에 이뤄졌다. 이번 합병 발표는 보안이 최우선되서인지 그룹 고위인사들과 사내 변호사 위주로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본시장에 해박한 그룹 내 금융전문가들은 참여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결정하면 시장은 당연히 따라올 것`이란 인식이 지나치게 강했던 것 아닌가 싶다. 자본시장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게 부족했다. 이런 점이 행동주의 헤지펀드 중 `독종`으로 꼽히는 엘리엇매니지먼트에 허점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이번 합병은 삼성에 힘겨운 싸움이었다. 주총 출석률은 84%를 넘어 전체 주주의 56.5% 이상 지지를 얻어야 했다. 주총에서 58.9%의 찬성표를 얻었으므로 불과 2.4%포인트 차이다. 지분 1% 이상 보유한 기관투자가 2~3곳만 추가로 반대했어도 합병은 무산됐을 것이다.

22%에 달하는 소액주주의 절반 이상을 모은 것은 삼성물산 임직원들의 성과다. 나아가 대부분 국내 기관투자가와 함께 싱가포르투자청(GIC)과 디멘셔널 등 외국 기관투자가까지 삼성 편으로 만든 건 금융전문가들의 노력으로 평가된다. 초기에 냉소적이었던 국내 기관투자가들도 서서히 마음을 돌렸다. 그만큼 삼성은 국내 기관 등 자본시장 참가자들에게 빚을 진 것이다.

엘리엇 공습 2개월이 흐른 6일 삼성물산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마감됐다. 다행히 청구권 행사규모가 합병을 무산시킬 만큼은 아니다. 삼성 입장에선 통합 삼성물산 출범과 함께 2차 지배구조 개편작업에 속도를 내게 됐다.

그러나 시장의 신뢰를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시장에선 최근 삼성전자 주가가 이를 보여준다고 여긴다. 삼성전자는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줄곧 약세다. 며칠 새 10% 이상 떨어졌다. 실적이 부족한 면도 있지만 주주친화책이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엘리엇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며 이제 철수 수순을 밟고 있다. 앞으로 삼성이 해야 할 일은 주주는 물론 자본시장 전문가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 뛰어난 실적은 물론이고 뉴노멀 시대를 맞아 글로벌 스탠더드에 적합한 주주정책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