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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밤의 풍류가 흐른다

신오덕 2015. 8. 11. 10:10
[매경춘추] 팔월 소묘(素描)
기사입력 2015.08.10 17:28:20 | 최종수정 2015.08.10 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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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의 아파트 창가에 참매미소리가 요란하다. 쓰르르르 맴맴! 간단없이 귓가를 울리는 가운데 밖에 내려다보이는 디엠시역 경의선 철로를 지나가는 붉은 차창들 사이로 부지런한 사람들의 오가는 모습이 잡힌다. 연일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가만히 앉아 있기도 힘들다. 과거 우리네 선조들이 여름에 땀띠 나고 피부병이 생기는 연유를 이해할 만하다. 할아버지는 팔뚝에 대나무로 만든 토시를 꼈다. 삼베로 만든 적삼을 입고 죽부인을 안고 잠을 청하였다지. 그래서 죽부인은 절대로 아들에게 물려주는 게 아니라고 하였다.

전날 저녁에 인사동과 운현궁을 다녀왔다. 인사동에서 10여 년간 전통규방공예를 가꾸어온 분이 있다. 동호인 4만명을 키워냈고 그들이 세계 곳곳에 나가서 한국의 고품격 규방문화를 알리고 있단다. 무엇보다 한국 특유의 풀 먹인 비단조각으로 온갖 맵시를 창조해내는 조각보 제작 솜씨가 경탄을 자아낸다. 섬세한 바느질 땀이 그대로 드러나는 형태는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한국조각보의 독특함이라 한다. 대한민국 전통브랜드의 현재진행형이다.

운현궁에서는 매주 금요일 한여름 밤의 풍류가 흐른다. 시민들이 무료개방의 혜택을 누리면서 거문고소리와 시조창을 들을 수 있는 기회이다. 우리 문화유산이 박제된 공간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함께 숨쉬며 살아있는 전통을 당대에 전수하고 체험함이 어찌 아름답지 않으리요. 도심에 정갈하게 빗자루질 되어 있는 마당이며, 오래된 소나무와 역사의 이끼가 입힌 정원이며, 추사체를 집자(集字)한 이로당(二老堂)의 힘찬 당호(堂號)가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린이나 엄마나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나 모두 진지하고 반듯한 자세로 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검약하되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다.

팔월은 감격과 뜨거움과 가을을 향한 땀 흘림이 있어 아름다운 달이다. 논에서는 피 뽑기와 김매기가 한창이고 공장에서는 구슬땀을 흘리며 수출전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제각기 최선을 다하는 나라, 그래서 여전히 지킬 만하고 물려줄 만한 우리 조국이다.

문화와 관광은 이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전국의 비경을 스스로 찾아서 즐기고 체험하며 성숙한 관람문화와 여가문화가 자리매김해 가는 것을 본다. 자랑스러운 나의 대한민국!

[박광무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