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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잔을 기울이고 내일로 나아가라

신오덕 2015. 8. 17. 11:26
[매경데스크] 형제는 무엇으로 사는가
기사입력 2015.08.13 17:27:07 | 최종수정 2015.08.13 19: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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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 감독의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아일랜드 독립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형제의 불행한 이야기를 다룬다.

소년 시절부터 아일랜드 독립군에 가담해 싸워온 형제는 막상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자 서로 대립하는 기구한 운명에 처하게 된다. 형 테디는 북아일랜드가 포함되지 않은 불완전한 독립이지만 일단 받아들이고 점진적인 투쟁을 하자는 쪽이었고, 동생 데이먼은 끝까지 싸워 완전한 독립을 쟁취하자는 강경파였다.

그들은 공통의 적이었던 영국이 물러난 땅에서 서로 총부리를 겨눈다. 그리고 어느 날 동생이 포로로 잡혀오고, 형은 동생에게 방아쇠를 당긴다.

필자는 동생을 죽이는 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름답고 목가적인 아일랜드의 풍경과는 너무도 다른 영화의 결말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하긴 형제간의 대립을 다룬 영화나 소설은 무수히 많다. 신화나 전설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인류 최초의 살인도 형제간에 일어났다고 한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이 그것이다. 아담과 이브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카인은 농사를 지었고, 둘째 아벨은 목축을 했다. 그런데 여호와가 카인이 바친 곡식보다 아벨이 바친 양을 더 좋아하자 이것을 시기한 카인은 아벨을 죽인다.

훗날 정신분석학자들은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착안해 `카인 콤플렉스(Cain Complex)`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 개념에 따르면 형제간의 대립이 타인보다 더 격렬한 데는 이유가 있다. 내 자신과 아주 가깝거나 혹은 내 분신이라고 생각하는 대상에게 당하는 패배를 가장 못견뎌하는게 인간 본성이라는 것.

이 형제 대결(sibling rivalry) 가설은 다른 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요즘 유행하는 책 `미움 받을 용기`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알프레트 아들러는 `출생 서열(birth order)`이론을 만든 인물이다. 말 그대로 출생의 서열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아들러는 먼저 사랑을 차지하고 있었던 첫째는 보수적이며 안정지향적이고, 사랑을 쟁취해야 하는 둘째는 경쟁적이고 야심가라고 주장한다.

프랭크 설러웨이 미국 MIT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차남 우위론`이라는 걸 내세웠다. 그는 자신의 책 `반항아로 태어나다(Born to Rebel)`에서 "무한경쟁의 현대를 살아가기에는 차남이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기업을 경영하기에는 차남이 적합하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의 주장은 6500명이라는 역사 인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여서 더욱 그럴듯하게 다가온다.

또 호사가들은 장자 승계를 원칙으로 한 유교 국가 조선에서 27명의 왕 중 장남이 8명에 불과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면서 `차남 우위론`을 편들기도 한다.

이런 형제 관계에 대한 가설들이 부쩍 관심을 끌기 시작한 건 다름 아닌 롯데그룹의 형제간 경영권 다툼이 연일 화제가 되면서부터다.

필자는 사실 이 같은 가설들을 믿지 않는다. 이런 이론들이 확고부동한 법칙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카인 콤플렉스`나 `차남 우위론` 등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허점이 너무 많다. 그 이론들을 반박할 만한 증거도 무수히 많다.

미국 아이비리그 신입생의 3분의 2가 장남이라는 통계도 있었고, USA투데이가 성공한 CEO 155명을 조사했더니 59%가 장남이었다고 한다. 장남의 평균 IQ가 차남이나 막내보다 높았다는 노르웨이 통계도 있다.

필자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보다 한국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등장하는 형제애가 더 보편적이라고 믿는다. 형제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관을 걸어나오며 동생에게 전화를 거는 내 모습이 이 시대 대다수 형제들의 전형이다.

몇몇 재벌가의 경영권 다툼을 보고 `형제는 원래 라이벌`이라고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 주변에 뭉클하고 따뜻한 형제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가.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동생을 찾아가 소주잔이나 기울여야겠다.

[허연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