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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기 피해액을 살피고 나아가라

신오덕 2015. 8. 28. 09:31
[기고] 금융질서 확립이 금융혁신을 견인한다
기사입력 2015.08.27 17:12:33 | 최종수정 2015.08.27 18: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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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힘들게 모은 돈을 보이스피싱으로 한순간에 다 잃은 노인의 절규가 잊히지 않는다. `금융회사가 이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을까`라는 안타까움도 컸다. 2014년 한 해 동안 금융 피싱 사기 피해액은 2165억원, 대출 사기 피해 상담 건수는 3만3410건에 이르렀다. 최근 3년간 1인당 피해액은 약 1130만원으로 2013년 1인당 국민 세금 부담액(509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또 금융감독원이 처리한 금융소비자의 민원 건수는 약 7만8779건에 달했다. 가계 금융자산 규모가 2886조원(2014년)으로 크게 늘어났음에도 금융서비스에 대한 대국민 만족도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동안 현지화 중심의 글로벌화, 혁신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소비자 보호의 지속적인 강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왔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의 기본질서가 아직까지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금융질서는 금융회사를 비롯한 모든 경제 주체가 금융 행위에서 `자율과 책임`을 다할 때 지켜진다. 알아야 할 것과 유의해야 할 것들을 꼼꼼히 살펴본 후 결정하는 금융 자율성과 사후적으로 발생하는 금전적 부담을 감내하는 금융 책임성이 작동해야 한다. 교통질서를 지키듯 각자의 책임에 대해 최선을 다할 때 금융은 발전할 수 있다.

은행에서의 예금 계좌 개설을 예로 들면 계좌 개설 절차를 엄격히 하면 일시적으로 불편할 수 있지만 그 불편의 단계를 받아들이고 나면 안전한 금융 거래를 할 수 있어 서로에게 득이 된다. 이는 결국 대포통장이나 차명거래로 인한 금융 사기를 대폭 줄일 수 있고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금융 산업 질서 회복은 금융회사가 주도해야 효과적이다. 금융회사는 소비자와의 최종 접점에 있다. 고객 입장을 최우선시하는 금융 문화가 확산될 때 금융질서가 바로 설 수 있다고 믿는다. 불필요한 절차로 인해 불편을 초래하거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행위, 위험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거나 금융약자에 대한 충분한 배려를 하지 않는 것, 마땅히 지급해야 할 것을 지연하거나 숨기는 것은 기본질서에 반한다. 그동안 급증하는 금융 사기와 정보 유출 문제, 과다한 민원 등 사회적 논란에도 금융회사 스스로 이를 방지하기 위한 고객 관리나 보안 관리, 프로세스 개선 노력을 소홀히 한 것은 재발 방지를 위해 반드시 고쳐나가야 한다.

고객 편에서 투명한 기준에 의해 금리와 수수료를 책정하고 효율적인 경영을 통해 금융비용을 절감하는 한편 합리적인 리스크 평가로 자금 조달상 제약을 완화해나갈수록 금융질서는 더욱 견고해진다. 고객이 어떤 상품과 서비스를 원하는지 더 깊이 파악하고, 더 넓게 이해하고, 더 나은 해결점을 찾는 창의적인 서비스 관행이 나타나야 한다.

금융소비자도 금융회사에 대한 권리와 책임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금융소비자는 금융회사로부터 공정한 대우와 합리적인 비용의 분담, 충분한 정보 제공 등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 금융회사가 이를 위배할 경우 보상받을 법적 권리도 보장돼 있다. 반면 고위험 투자에 따른 원금 손실 가능성이나 대출에 따른 상환 비용 등을 충분히 감안해야 사후 책임이나 사후 분쟁을 줄일 수 있다. 즉 금융소비자의 사려 깊고 합리적인 선택이 금융질서의 또 다른 근간이 된다고 하겠다.

금융당국도 금융시장 참가자의 자율과 책임이 정착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현장 중심의 소통으로 자율성을 높이고 엄정한 원칙에 의한 검사 제재로 책임을 강화할 때 전체 금융 산업의 질서 수준은 높아질 것이다. 감독당국은 금융회사 임직원의 권리를 최대한 존중하고 금융시장은 위법 행위를 스스로 자제해나가는 자율 기능 회복을 촉진하는 것이 금융질서를 지키는 또 하나의 축이 될 수 있다.

금융 산업은 실물경제와 함께 성장한다. 선진금융의 달성은 `공정성, 투명성, 일관성, 책임성`이라는 금융의 기본원칙을 더 확고히 하는 데 있다. 회사후소(繪事後素), 즉 그림을 그리기 위해 흰 바탕이 있어야 하듯 금융질서가 탄탄할 때 금융 산업이 미래의 먹거리를 창출하는 핵심 산업이 될 것이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