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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대사의 행적을 찾고 움직인다

신오덕 2022. 3. 29. 13:09

[명승명산] 연기·원효·도선·진각국사가 수행한 신비의 암자

글·사진 박정원 선임기자 입력 2022. 03. 29. 10:14 댓글 0

 

'한국의 명승' 명산 <15> 구례 오산 사성암
 
오산은 원래 신선이 사는 산이란 의미

 

고승 네 명이 수행을 한 곳이라 전하는 오산 사성암은 암자의 건립 형태부터 눈길을 끈다. 간직한 전설도 신비스런 내용으로 가득하다.
 
전남 구례 오산鰲山(530.8m)에 가면 사성암四聖庵이 있다. 흔히 오산 사성암이라 부른다. 오산 사성암, 아니 오산과 사성암은 많은 신비스런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다.
 
오산은 원래 전설에 신선이 산다는 산이다.
 
큰 자라의 머리에 얹혀 있다는 바다 속의 산, 즉 오산에 신선이 머물러 있다고 전한다.
 
한국에는 산이든 단순한 지명이든 의외로 오산 명칭을 가진 지역이 많다.
 
도교의 영향을 받은 성리학이 조선의 지배적 학문이 되면서 선비들이 무위자연사상에 빠져 가는 곳마다 명명한 것 아닌가 짐작한다.
 
따라서 오산은 도교에서 천하의 명당을 가리키는 동천洞天 복지福地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오산이나 동천, 복지의 동네를 가면 ‘아, 이 곳이 한때 신선이 나올 만한 명당이었구나’ 하고 유심히 살펴보면 된다. 분명 포근한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산 정상에서 길게 뻗은 능선이 매봉을 거쳐 둥주리봉으로 펼쳐져 산그리메를 그리고 있다.

그 신비스런 오산에 있는 사성암은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알려진 바로는 오산 못지않게 신비스런 장소로 유명하다.
 
암은 글자의 의미에서 알 수 있듯 네 명의 성자가 있는 암자이다.
 
이것도 고대부터 이름난 한국 최고의 승려들이다. 구례 화엄사를 544년 창건하며 한반도 화엄종의 시조가 된 연기조사, <화엄경>의 중심사상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닫고 대중화한 원효대사, 신라 말 한국풍수의 창시자 도선국사, 고려시대 화엄종 중심으로 불교 개혁을 주창했던 진각국사가 바로 그들이다.
 
1,000년의 세월을 넘어 네 명의 고승이 한 장소에서 수도를 했다는 그 신비의 장소가 바로 사성암이다.
 
이 정도면 진위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최고의 스토리텔링 소재를 간직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수준이다.
 
화엄종은 불교를 국교로 했던 신라와 고려의 핵심사상이다. 거기에 한국풍수의 창시자 도선국사까지 함께했으니 이만한 소재를 가진 암자가 어디 있겠나. 사성암에 있는 마애입상불은 도선국사가 조각했다는 전설까지 간직하고 있다.
 
사성암 전망대에 올라서면 발 아래 유려히 흐르는 섬진강 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주변으로 모래사장과 평야가 길게 펼쳐져 있다. 그런데 그 동네 지명이 예사롭지 않다. 모래사장에 그림을 그리는 동네라는 의미인 사도리沙圖里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실제인지 기막힌 지명이 아닐 수 없다. 사도리는 도선국사가 한국풍수를 창시하기 전 섬진강 주변 모래사장에서 산천의 형세를 그리며 지웠다를 반복하며 풍수의 실전감각을 익혔다는 데서 유래한다.
 
도선이 풍수의 형세를 공부했다는 사도리만 제대로 파악해도 한국풍수는 어느 정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이를 뒷받침한다. 구례현 산천편에 ‘오산은 현의 남쪽 15리에 있다. 산 정상에 바위 하나가 있고, 바위에 빈틈이 있는데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세상에 전하기를 “중 도선이 예전에 이 산에 살면서 천하의 지리를 그렸다”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 봉황이 성을 쌓았다는 봉성산鳳城山과 바닷물이 들어오는 못인 용왕연龍王淵이 있다.
 
온통 신선이거나 신선과 가까운 상상의 동물들뿐이다.
 
바로 마주보는 산은 신선사상의 본당이라 할 수 있는 한국 최고의 지리산이다. 명당과 동천과 청학동을 품고 있다. 사성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지리산과 섬진강 줄기는 한마디로 환상적이다.

연기·원효·도선·진각국사가 수행했다고 전하는 사성암 동굴.

섬진강 지류 지명은 도선이 산천을 그렸다 해서 사도리
 
또 섬진강은 어떤 강인가. 한반도에서 봄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는 강이다.
 
1월 말부터 채취하는 남녘의 고로쇠 수액을 따라 얼음장 밑으로 봄의 전령 황어가 알을 낳기 위해 바다에서 부지런히 올라오면서 겨울 속에서 봄이 머지않았다는 소식을 알린다.
 
산사면엔 눈과 얼음이 아직 그대로다.
 
이어 매화마을엔 매화가 만개하고 벚꽃 필 때 전후해서 수확하는 민물 굴인 벚굴, 일명 강굴도 섬진강 하류에서만 채취하는 시기가 되면서 봄은 북상하기 시작한다. 그 중심에 오산이 있다.
 
따라서 오산은 한반도 봄의 전령이면서 화엄종을 품고 있고, 한국풍수를 창시한 장소인 것이다. 빼어난 자연경관과 역사적 의미를 함께 지닌 명승지라고 할 수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 2014년 8월 오산 사성암 일원을 명승으로 지정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자연경관이 빼어난 오산은 <봉성지>(구례향교 1800년 발간)에 그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금강산과 같으며, 예부터 부르기를 소금강이라 기록하고 있다.
 
사성암은 오산 정상의 깎아지른 암벽에 지은 사찰로,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연기조사가 건립하여 원래 오산암이라 불리다가 이곳에서 의상(문화재청은 연기조사가 아닌 의상으로 기록하고 있음)·원효대사·도선국사·진각국사 4명의 고승이 수도하여 사성암으로 불렸다고 한다.
 
암자 주변에는 우뚝 솟은 기암괴석이 있는데 그중에서 풍월대, 신선대, 소원바위 등 12비경이 빼어나 명승으로 지정됐다.
 
또한 오산 사성암은 섬진강과 평야, 구례읍과 7개 면과 지리산 연봉들을 한 곳에서 모두 볼 수 있는 경관 조망점이며, 오산 정상 풍경과 사찰 건물, 그리고 바위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성암 유리광전 암벽에 도선국사가 새겼다고 전하는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경관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사성암의 신비와 전설에 관해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몇 가지 사실이 있다.
 
먼저, 의상이나 연기, 원효와 같은 신라의 고승들이 수도했다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기록될 만한데 어디에도 관련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특히 야사인 <삼국유사>엔 확인할 수 없는 신비의 내용들이 수두룩한데 한국 최고의 네 명의 고승이 이런 암자에서 수도했다면 기록을 빠트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둘째, 고승 4명이 수도했다면 그 중요성에 비춰 고지도에도 일찌감치 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지도 초기에는 오산이란 지명을 찾을 수 없다. 조선 중기 들어 서서히 등장한다.
 
조선 초기 지리지에는 오산 관련 내용이 간단히 소개되지만 다른 명산에 비해 턱없이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
 
내용도 별로 없다.

 

사성암에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원바위도 있다.
 
빼어난 경관과 봄철 먹거리로 가득
 
 
셋째, 필자가 명승으로 지정되기 전 2007년쯤 방문했을 때 수도했다는 동굴도 보잘 것 없었고, 안내판도 없었다.
 
 
전각도 몇 채 되지 않은 조촐한 암자에 불과했다. 단지 절벽에 목재 기둥을 덧대 건립한 유리광전만 ‘이 암자를 어떻게 지었을까’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당시에 없었던 전각도 많이 늘었고, 당시에 없었던 신비스런 내용으로 곳곳이 스토리텔링돼 있다. 어느 새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는 단계까지 와 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성암 관련 스토리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회의가 드는 건 솔직한 심정이다.
 
 
오산이 역사서나 고지도에 언제부터 등장할까? 이와 관련해서 살펴보면 신빙성을 조금 보충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삼국사기>부터 <고려사>까지 고문서에서는 찾을 수 없다. 조선 초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소개된 뒤 중기 들어 개인문집인 <문곡집>에 처음으로 나온다. 〈문곡집〉은 영화 ‘남한산성’의 주인공인 김상헌의 손자이고, 김창집·김창협의 아버지 김수항의 문집이다. 그는 유독 산수를 좋아해서 한때 구례 오산에 집터를 잡아 대나무를 얽어 집을 짓고 거주했다고 전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긍익이 쓴 <연려실기술> 지리전고에도 소개된다. ‘오산은 (구례)군의 남쪽 2리에 있는 진산이다.
 
 
동쪽에 한 골짜기가 있는데 이름을 고사동高沙洞이라고 한다. 날씨가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려고 하면 먼저 골짜기가 울고 구름 기운을 뿜어낸다. 구름이 고사동 안으로 들어가면 비가 오고, 고사동 밖으로 나가면 바람이 분다.’

 

오산 정상 부근에 자라 모양을 한 석조물이 있다.

 

역시 신비한 산으로 묘사돼 있다. 마주보는 지리산에 가려서 그런지 역사에 별로 등장하지 않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섬진강을 끼고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것도 사실이다. 조선 말기 매천 황현도 지리산과 오산에 거주했다고 한다. 그가 남긴 시가 있다.
 
 
‘어기여차, 들보를 남쪽으로 드세나/ 도선 국사 옛 암자를 멀리 바라본다/ 모래사장에 그이 자취 있는가 없는가/ 이 복지에 자욱이 구름 이내 일어나네.’
 
오산 등산은 정상 바로 아래 사성암까지 왕복버스가 운행한다. 섬진강 옆 죽연마을 주차장에서 사성암까지 편도 1.9km가량 되며, 정상까지는 2.4km이다.
 
마을에서 왕복버스를 운행하며 성인 왕복 3,400원. 택시는 왕복 1만 2,000원, 편도 7,000원. 사성암에서 정상까지는 불과 500m밖에 안 된다. 정상에는 사방이 확 트인 전망대가 있어 지리산 천왕봉까지 조망할 수 있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산행 코스는 주차장이 있는 죽연마을에서 출발한다.
 
▲죽연마을에서 정상을 거쳐 매봉~선바위삼거리~동해마을능선삼거리~둥주리봉을 거쳐 성지마을까지 가는 종주코스는 총 9.3km에 5시간 남짓 소요된다.
 
▲죽연마을에서 정상을 거쳐 동해마을능선삼거리에서 동해마을로 하산하는 코스는 7.7km에 4시간가량 소요.
 
▲죽연마을에서 정상을 거쳐 선바위삼거리에서 마고실마을로 하산하는 코스는 8.4km에 4시간 30분가량 소요.
 
 
▲죽연마을에서 오산약수터와 정상을 거쳐 사격장이 있는 면소재지로 하산하면 3.1km에 2시간가량 걸린다.
 
▲죽연마을에서 정상과 매봉을 거쳐 된재 갈림길에서 사격장이 있는 면소재지로 하산하면 4.1km로 2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고지도 ‘대동여지도’에 나온 오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