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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철과 신념
베델과 헐버트 본문
[이규태 코너] 베델과 헐버트
개성 인근 폐사에 서 있던 이 석탑은,
이 탑에 빌면 만병이 통치된다는
약황탑(藥皇塔)으로 팔도에서 사람이
모여들었기에 하룻밤 사이의 증발에
소문이 퍼졌고, 이에 격분한 영국 언론인
베델(한국명 배설·裵說)이 그가 간행하던
영자신문 ‘코리아 데일리 뉴스’에 이
사실을 확인, 폭로했다.
이에 당시 통감부계 영자지인 ‘서울
프레스’와 일본 정부 대변 영자지인
‘재팬 메일’지는 허위·모략 보도라고
반박했고 베델은 갖은 압력과 협박·
회유를 박차고 사실을 배경으로
대논쟁을 벌였었다.
이 와중에 당시 헤이그 밀사사건에
깊이 관여했던 미국 언론인 헐버트가
일본 고베에서 발행하는 최대부수의
영자지 ‘재팬 크로니클’에 ‘누가 석탑
을 훔쳐갔는가’를 비롯, 여섯 차례에
걸쳐 석탑 도적질을 신랄하게 비난
하는 글을 실었다.
그는 고종의 밀사로 헤이그에 가서도
당지 신문 ‘쿠리에 드 라 콘페란스’에
석탑 약탈 사실을 기고했고 미국의
유력지 ‘뉴욕 포스트’도 이를 받아
대서특필하자 일본의 일간지 ‘만조보’
‘고베 신문’ ‘도쿄 저널’ 등지에서
이를 받아 보도하여 당시 조선 통치를
하던 이토(伊藤博文) 등을 곤욕에
빠뜨렸다.
일본이 내세운 한국의 보호통치의
상징이라고, 이 석탑 약탈사건이
국제여론으로 파급되자 감당할 수
없었던 데라우치(寺內) 일본 총독은
이를 반환, 경복궁 회랑에 방치해둔
채 광복을 맞은 것이다.
복원된 13층탑 곁에 민족과 정의를
위해 싸운 베델과 헐버트의 사적(事蹟)
및 공적비가 반드시 세워져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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