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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오덕 2005. 7. 6. 12:26


 

 

 

[조용헌 살롱] 옥새(玉璽)


 

 
 
입력 : 조선일보  2005.07.04 18:48 02'


 

 


▲ 조용헌
‘옥새’의 역사를 소급해
 
올라가면 ‘삼국유사’에
 
까지 도달한다.
 
‘삼국유사’ 첫 장에 우리
 
나라의 최초 고대국가는
 
‘하늘로부터 천부인
 
(天符印) 세 개를 받아
 
국가를 열었다’는 대목
 
이 보인다.
 
 
‘천부인’이라고 하는 도장은 하늘의 뜻과
 
권위를 상징한다.
 
천부인을 받았다는 것은 하늘의 결재를
 
받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조선조의 역대 왕들이 사용하였던 도장
 
인 옥새도 바로 이러한 맥락의 권위를
 
상징한다.
 
왕이 지닌 권위를 가장 작은 조형물로
 
압축한 것이 옥새이다.
 
그래서 왕이 바뀔 때마다 옥새를 확보
 
하는 일이 관건이었다.

 

인조반정 때 혁명군이 거사를 하면서

 

가장 먼저 손을 썼던 일이 광해군으로

 

부터 옥새를 돌려받는 일이었다.

 

 

왕이 사망하였을 때는 부인인 대비가

 

옥새를 보존하고 있다가, 세자가 왕으로

 

즉위할 때 옥새를 전해 주었다.

 

 

조선시대에 새로운 왕이 즉위할 때

 

가장 중요한 의례가 바로 옥새를 인수

 

인계하는 부분이었다.

 

조선왕조 옥새의 시작은 정도전의 주장

 

에 의해서였다.

 

이때부터 옥새를 제조하는 비방을 적어

 

놓은 ‘영새(榮璽)부’라고 하는 장부가

 

전해져 왔었는데 중간에 오면서 옥새를

 

위조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나라에서

 

특별히 지정하는 옥새전각장 1인에게만

 

그 내용이 비전으로 전해져 왔다.

 

 

그 영새부를 이어받은 마지막 옥새

 

전각장이 이번에 ‘옥새’(인디북)라는 책

 

을 펴낸 민홍규(51)이다.

 

영새부의 제일 첫 구절은 ‘새인용처

 

천태(璽印用處地天泰)’라는 내용이다.

 

‘지천태’는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밑에 있으니 평화롭다는 의미를 지닌

 

주역의 괘 이름이다.

 

 

‘옥새는 지천태의 평화를 위해서 사용

 

한다’는 의미가 도출된다.

 

옥새의 제작과정에는 동양사상의 3대

 

축인 천시(天時)·지리(地理)·인사(人事)

 

의 삼재(三才) 사상이 농축되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만큼 옥새 제작은 인격 수양과 철학

 

이 요구되는 고난도의 작업이었다.

 

민홍규에 의하면 옥새를 배우는 데

 

고전공부 4년, 서예공부 4년, 전각학습

 

4년을 합해서 총 12년의 세월이 걸린

 

다고 한다.

 

 

그는 36년 동안 옥새 만들다가 폐와

 

신장까지 잃었다.

 

 

현재 한·중·일 3국 중에서 옥새 제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민홍규 한 사람뿐

 

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