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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대 불상

신오덕 2005. 7. 13. 12:59

 



 

[이규태코너] 등신대 불상


 


 
입력 : 2005.07.05 18:23 47'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대관식으로
 
유명하지만 역대 국왕의 묘소로도 알려져
 
있다.
 
 
이 사원에 안치된 관(棺) 뚜껑들에는 위를
 
보고 누워 있는 묻힌 이의 등신대 조각이
 
있으며 이를 미술용어로 지잔이라 한다.
 
 
영국뿐 아니라 유럽 기독교 문화권에서
 
이 관(棺) 조각은 관행으로, 각종 책에 실린
 
국왕이나 위인들의 초상은 바로 이 관 조각
 
에서 따온 것이다.

 

 


프랑스 혁명 때 성난 민중이 교회에 난입,

 

역대 국왕의 묘들을 파괴하면서 이 관 위의

 

등신대 조각은 사라져 갔고 대신 교회에서

 

광장(廣場)으로, 와상(臥像)에서 등신대

 

입상(立像)이나 기마상(騎馬像)으로 변신

 

하기에 이른다.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유럽의 국왕이나

 

위인들의 동상을 현지에 가서 보면 누구나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작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바로 등신대여야만 했던 지잔의 전통

 

때문이다.

 

 


조선 초기에 조성된 목조불상으로 알아

 

왔던 해인사 법보전의 등신대 비로자나불상

 

에 금칠을 하고자 복장(腹藏)을 열어보았

 

더니 신라 정승 내외분의 성불(成佛)을

 

서원(誓願)하여 이분들의 몸 크기만한

 

불상을 조성했다는 883년 신라 헌강왕

 

(憲康王) 때의 명문이 적혀 있었다.

 

 

목조불상의 뿌리를 소급한다는 뜻보다

 

부처님에게 귀의, 영생하려는 뜻으로

 

등신대의 불상을 조성하는 정신문화가

 

있었음을 실증하는, 한국 정신사료로서

 

도 값진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모습으로 영생하려는 유럽의

 

이기적 등신 문화에, 자신의 영생을

 

초월자에게 의탁하는 경건한 등신불

 

문화가 대비되어 싱그럽기도 하다.

 

 


왜 많은 불상 가운데 영생 기탁의 매체로

 

비로자나불을 택했을까.

 

위로 법과 도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의

 

아픔을 덜어주는 상하를 조화 통합시키는

 

부처가 비로자나불이다.

 

 

또 이 부처의 수인(手印)도 부처인 오른손

 

주먹으로 중생인 왼손 인지(人指)를 쥐는

 

지권인(智拳印)이고, 불상의 몸 꾸밈도

 

석가여래상에 비해 수식이 많아 현세적이다.

 

 

곧 불상의 크기를 등신대로 한 것은

 

바로 자신의 육체적 그릇에 비로자나불

 

의 불심을 담아 동일화(同一化)하려 했음

 

일 것이다.

 

 

삼국시대의 등신대 불상 가운데는 이 같은

 

영생 서원불상이 적지 않을 것이요, 불상

 

보는 시각을 더해주는 발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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