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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의 현금 베개

신오덕 2005. 7. 9. 12:40


 

 

 

[만물상] 노숙자의 현금 베개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tjoh@chosun.com

 
입력 : 조선일보 2005.07.07 09:09 59'
 

김유정의 단편
 
‘가을’에서 복만
 
의 아내를 사러
 
온 소장수가 지폐
 
를 센다.
 
‘조끼 단추구멍에
 
굵은 쌈지끈으로 목을 매달린 커단 지갑
 
이 비로소 움직인다.
 
1원짜리 때묻은 지전뭉치를 꺼내들더니
 
손가락에 연신 침을 발라가며 공손히
 
세어보고 뒤로 세어보고 이번에는 거꾸로
 
들고 또 침을 발라가며 세어본다.
 
 
이렇게 후줄근히 침을 발라 세었건만
 
복만이가 또다시 공손히 바르기 시작하니
 
지전은 침을 발라야 장수를 하나보다.’
 
 

▶돈은 아무리 낡고 지저분해도 아내까지

 

팔아넘기게 하는 몹쓸 위력만은 낡지

 

않는다.

 

김소월의 말년도 돈이 유린했다.

 

낙향해 생업에 실패하고 술에 빠졌을 때

 

지은 ‘돈타령’은 민족의 한(恨)을 노래해온

 

서정시들과는 딴판이었다.

 

 

‘있을 때에는 몰랐더니

 

없어지니까 네로구나.’

 

이번엔 돈이 그에게 말한다.

 

 

‘내가 누군줄 네 알겠느냐

 

내가 곧장 네 세상이라.’

 

시인의 삶뿐 아니라 정신마저 돈 앞에서

 

망가졌다.

 

 

▶돈은 종으로선 최선이지만 주인이

 

되면 최악이다.

 

부산의 60대 노숙자가 베고 자던 비닐

 

보따리에서 3000만원에 이르는 현금

 

다발이 쏟아졌다.

 

고무줄 따위로 묶은 100만원 돈다발

 

들은 비와 땀에 절어 냄새가 나고

 

구겨지고 뭉개져 있었다 한다.

 

그는 “30년 넘게 구걸해 모은 돈”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늘 베고 잤다고

 

했다.

 

 

“돈을 쓰고 싶어도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 쓸 수 없었다”는 모를 말도 했다.

 

 

▶당(唐) 시인 유종원(柳宗元)은

 

‘부판전(傳)’에서 짐 지기 좋아하는 곤충

 

부판을 노래한다.

 

부판은 물건을 만날 때마다 머리 위로

 

올려 진다.

 

 

갈수록 무거워져 견디기 어려워도 힘이

 

다할 때까지 지고 가다 결국 죽는다.

 

 

유종원은 부판에서 사람의 모습을 본다.

 

‘재물 취하기를 즐기는 사람은

 

이미 쌓아놓은 것은 모른 채 쌓지 못한

 

것만 두려워한다…

 

 

덩치 큰 사람이라 해도 지혜가 작은

 

곤충이니 애석하지 않은가.’

 

 

▶우리는 평생 허겁지겁 돈을 모아 집을

 

얻고 자식을 독립시키고 한숨 돌릴

 

만하면 멀지 않은 앞에 죽음이 보인다.

 

 

돈이 악(惡)이 아니라 돈에 대한 집착이

 

악이다.

 

그 노숙자에게 돈 보따리는 편한 베개

 

가 아니라 돈 냄새, 동취(銅臭) 풍기는

 

거북한 짐이었을지 모른다.

 

 

‘오늘 아침은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천상병 시인 같지 않은 바엔 우리

 

모두의 팔자도 그 노숙자와

 

그리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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