落花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 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가솔송님 방에서 가져온 으름나무꽃]
어제 길 건너 <김가네 김밥>집 세집건너에 또 <김밥천국>이 생겼습니다. 그까짓 ? 천원짜리 김밥집 개업식에 이벤트가 요란합니다. 풍선장식에 ,이벤트걸이 등장하여 음악소리도 요란하게 춤을 추고 ,
아이들에게 풍선을 나눠줍니다. 길가던 사람들이 모두 한번씩 걸음을 멈추고 그 집을 돌아봅니다.
얼마전부터 손님이 줄어 알바도 내보내고 혼자서 김밥을 말던 김가네 사장이 아예 의자를 밖에 내놓고 넋 놓고 김밥천국의 이벤트를 보고있습니다. <월매나 가슴이 씨리고 아플꼬...> 대각선방향으로 길건너에 있는 우리 가게에서
그 광경을 보는 내 가슴이 덩달아 쓰립니다.
이제 머지 않아 저 가게도 문닫고 말것같습니다. 김밥집이 없던 이동네에 들어와 한 3년 버텼는데 IMF이후에 각광을 받는, 천원짜리 마케팅에
드디어 밀려나는 시점이 오고야 만것 같습니다.
김가네가 들어오던 비슷한 시기,3년전쯤 우리 가게 바로 건너에 <스타샷>이란 이미지포토샵이 들어오던 때가 생각납니다.
기업윤리로 따지면 적어도 500미터 반경에 이미 오래전에 터 닦고 있는 동일 업종을
새롭게 개업하려면 좀 미안한 생각도 들어야하고 기존 가게에게 양해를 구하는 인사쯤 해야하는것 아닌가? 하는 나의 감상?은 그야말로 소녀적인 센티멘탈리즘?이었습니다.
먹고 먹히는 세상에서 그런 감상에 빠져 일의 시작을 망설이는 사람은 더이상 살아남을수없는 세상이 된것입니다. 아이돌스타가 판을 치고,너나없이 공주병에 걸린 소녀들과 눈부시게 도약을 시작하던 디지털화에 힘입어 그 가게는 우리에게 인사한번 안하고 3년을 잘 버티었지만, 작년에 폐업을 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아무짓도 안하고 그저 오래 버팀으로 우리 가게가 이긴 셈이 되었지만.... 우리 가게도 세월의 변화는 막을 수 없는 것이어서
아나로그사진 수요가 절대적으로 급감하고 디지털 카메라니 폰카니,하는 것들이 거의 필수품처럼 되어가는 이시점에서
사진관으로 필름인화를 맡기러 오는사람은
컴맹이거나 디지털 세상에 알러지가 있는 노인네들 뿐 이제는 사진을 찍는 순간만을 즐기고 ,컴에 올려 싸이버에서나 즐길뿐 인화하려는 사람들도 드문 이상한 시대가 되어버린지라
그때까지는 적자는 아니지만 가게의 수입은 점점 줄어갔습니다.
남들은 기왕 갖고 있던 기계도 낡았으니 디지털 인화기를 사라하였지만 남편이 계산기를 두드려본 바로는 우리에게는 과한 욕심이라는것이었습니다. 첫째 이제 우리부부의 나이가 새롭게 무얼 시작하는 나이가 아니다. 둘째 1억이 넘는 디지털 기계를 들여 놓으면 하루평균수입이 지금보다 십오만원이상 올라야하는데 더구나 가게주인이 월세를 갑자기 50만원이나 올려버린 상황이니.... 이미 디지털 기계를 들여놓은 다른 가게들을 수소문해본 결과 절대로 가망이 없다. 셋째 이제 노안이 점점 심해질터인데 더 이상 눈을 많이 써야하는 일은 그만하자
나무도 봄이되면 새잎을 피우지만
가을이 되면 제몸의 탈수?를 감당 못하여 잎을 떨어트려 훗날을 기약하지 않느냐.... 우린 지금 가을이고 낙엽의 때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3월이 시작되며 신학기 반짝 특수가 있어서 학생증 사진을 찍는 아이들이 줄을 서는 바람에 어제까지 수입이 괜찮았습니다. 적어도 열흘동안, 한달 월세금액만큼 올린 셈이니 감사한 일이지요. 사진관이 많이 없어져서인지 반포에서 왔다는 아이도 있고 개포동이나 우면동쪽에서 온 아이들도 있고 단골이던 엄마 아빠가 잠실에서부터 데리고 온 아이들도 있어서 한 열흘동안 우리의 퇴근 시간이 고무줄처럼 탄력이 불가피 했습니다.
날마다 요즘 같으면 사진관을 그만둔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되겠지만 ^^ 이자리에서 10년이상을 버틴 우리는 사진수요의 싸이클을 압니다. 옛날에는 3월이 지나고 봄꽃철이 되면 효도여행사진,신혼여행사진이 들어왔지만 이젠 신혼여행 사진은 전무하고,휴가철도 그저 그럴것이니...
옆 부동산의 충고대로 지금 재건축중인 영동아파트가 새얼굴로 어서 입주를 할때까지 우리는 그저 숨쉬기운동이나 하면서 기다려야할것입니다. 상가가 부족한 그 아파트 단지를 겨냥한 상인들이 제값을 [권리금] 주고 우리 가게를 인수하려 모여들, 그때까지 참으라는 거지요.
우리 부부가 요즘 둘이서 새벽에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하는 기도가 이렇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언제가 가장 좋을지, 그 때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더좋은 것으로 우리의 부족을 채워주실지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무지하오니 ,주여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 때가 되면 어떤 명령이라도, 비록 조금 손해가 날지라도 주님이 제시하시는 방향으로 그저 묵묵히 순종하겠나이다.
[역시 가솔송님의 변산 바람꽃]
나이먹으면서 세상의 흐름을 보는눈이 조금씩 자라는것을 느낍니다. 정치판이나 매스컴에서 와글와글 하는 이슈들을 보면 , 아 저일이 필경 어떻게 되고 말겠구나 하는것들을 어렴풋이 감잡게 되더라구요.
이헌재부총리의 부동산투기의혹으로 매일 시끌벅적할때 내가 남편에게 . <결국 자리를 내놓게 될것 같은데?> 했었는데 결국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총리는 그자리에 오르기전에도 이미 충분히 부자였는데 4년동안 60억이나 불어난 재산으로 의혹이 증폭된것입니다.
내 나이의 부부가
최소한의 품위유지를 하면서 25년동안 살수있는 비용이 6억정도라고 하는데... 사업가도 아닌데 4년동안 불어난 재산이 60억이 넘는 다니... 보통사람들이 좀 기가질리는건 사실이겠습니다.
배도 좀 아프고 ,혹시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늘린건 아닌가하고 제일인듯 달려들어 죽을둥 살둥 뒤를 캐내어
온갖 비하인드스토리를 밝혀낸건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 나는 바담風해도 너는 바람風해라' 하고싶어합니다. 公人들에게는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고 할수있으면 모든 관료들이 황희정승처럼 가난하고 청빈하기를 원합니다. 어쩌면 대리욕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그가 아직 젊었을때 우리의 허락없이 얻은 마누라까지도, 그녀가 청빈을 감사하고 묵묵히 감내하는 천사이기를 원합니다. 저절로 쌓이는 월급도 땅 같은것 사지말고
은행에 보통예금으로 넣어두어 쥐꼬리만큼씩 자연증식하게하던가 가난한 이웃에게 펑펑 나눠주어 쌀독에는 먹을만큼의 쌀만 남아있기를 바라는것입니다.
명예와 富를 둘다 갖지말기를 원합니다. 결코 烏飛以落을 인정하기 싫고
어떤 경우에도 오얏나무밑에서 갓끈을 고쳐매지 말고 참외밭에서 신발끈을 고쳐매지말라는것입니다.
그런면에서 보면 우리교회의 손봉호장로님은 존경할만합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대표,공명선거위원회의 대표이시며 서울대 철학교수를 정년 퇴임하시고 동덕여대 총장으로 취임하신 장로님은 ...
29년전에 몇몇지인들과 우리교회를세웠을때 그냥 독실한 평신도였습니다. 곧 화란으로 유학을 떠났고
신학과 철학박사학위를 얻었지만 끝내 목사안수는 받지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또 할렐루야교회가 목사없이 방황하던 시절 몇년동안 매주일 설교를 맡아하셨지만 한푼도 사례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서울대에서 받는 교수월급과 방송출연료,
원고료만으로 생활이 충분하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교회에서는 그럴수없다고 하도 야단하여
통장 하나를 만들어 거기에 입금하게 하였는데 한번도 확인하지 않고 놓아두셨다가
작년말 어떤 선교사부부가 암에 걸려 수술비조달이 어려움을 알고 8천만원이 넘는 그돈을 몽땅 그분들의 수술비로 내놓았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대형교회가 되는것을 원치 않아 계속 분립개척교회를 만들고 있는데 5개나 되는 그 교회들을 돌아가며 한번씩 설교를 해주시고도
여전히 사례비를 받지 않으십니다. 자신은 목사가 아닌 평신도로써, 어디서나 예배를 드려야하는데 , 다른분들이 찬양대로 봉사하는것처럼 설교도 은사라고 생각하며 봉사하신다는것입니다.
생활면에서도 부부가 다 지나치게 청렴결백하십니다. 사모님은 화장끼없이 고무줄로 질근 동여맨 헤어스타일을 35년이상 고수하시고 몇년전에는 아들 결혼식을 아무에게도 알리지않아
우리교회에서 참석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작년에 서울대를 정년퇴임하시고 동덕여대 총장으로 취임하셨는데 최근에 네티즌이 뽑은 가장 존경하는 총장으로 뽑히셨습니다. 또 1월 말에는 우리교회에서 네분 장로님들과 같이 장로 퇴임을 하셨는데 교회측에서는 장로님의 그간의 공로를 기리고 싶어서
기념패와 사모님께 옷한벌을 해드리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교계인사들을 초대하여 뷔페로 식사대접을 하려고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이것을 어찌 아신 장로님이 노발 대발하시고 별도의 프로그램 갖지말고 오후예배때 간단히 고별설교하시고 다과나 나누는걸로 하지않으면
참석도 안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나도 그 준비위원에 들어서 일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는데
일이 그렇게 되어 생강차만 끓이면 되었고
교회는 적어도 5백만원이상의 예산을 40만원정도들인 다과회로 줄일수있었습니다.
오후예배시간이라 형제교회의 목사님들조차 참석치 못하시었는데 과연 영동교회답고,손장로님 답다..고 칭찬을 하였습니다.
다른교회에서는 70세가 되어도 장로직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는데 우리 교회는 5년 임기 지나고 한번의 안식년을 거친후 재신임 받더라도 5년만 시무하는규정을 지키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번 퇴임하는 네분의 장로님중에 실제로 70이 되신분은 한분도 없었습니다.
물질에 깨끗하고 믿음과 학문의 정절을 지키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시류에 흔들리지않고,어떤 외압에도 굴복하지않고
옳은것을 옳다 말 할 수있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떠나야 할 때를 분명히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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