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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새롭게 하는 형식들

신오덕 2006. 4. 8. 13:46

 

 

 

[일사일언] 삶을 새롭게하는 형식들

 

 


신춘문예 시상식날
 
나는 가장 기뻐야 할
 
텐데도 잔뜩 골이 나
 
있었다.
 
 
잠은 한숨도 못잔데
 
다, 세탁소에 맡긴 무
 
대의상(?)은 감쪽같
 
이 사라졌다.
 
 
허둥지둥 미용실에서 한 머리는 결혼식 신부
 
처럼 눈 뜨고 봐 줄 수 없게 부풀어 있었다.
 
 
아 시상식만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대로 도
 
망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시상식장 단상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수많은 하객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나도

 

그들을 지켜보았다.

 

 

순간 놀라운 일을 발견했다.

 

 

거기 모인 하객들이 결코 한 자리에 모일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시인 소설가, 연극배우, 화가, 영화감독, 사진

 

작가, 가정주부, 학원강사, 경찰, 건축사 등등.

 

이건 숫제 마법이야! 나는 혼자 웃었다.

 

 

▲ 이윤설·2006년도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나는 언제나 내 삶이 새로운

 

내용을 갖기를 원했다.

 

그러나 모든 형식들, 가령

 

결혼식이나 입학식, 제사나

 

장례식같은 것은 부질없고

 

부자연스러우며 불필요한 절

 

차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날 시상식은 이 삶

 

에서 한번도 모일 수 없는

 

사람들을, 마치 수리수리마

 

수리 얍! 하고 한자리에 불러 모으는 마법의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모여 나의 출발에 대한 책무를

 

주고 있었다.

 

 

시인의 삶을 살아가도록 붙잡아주는 듯 느껴

 

졌다.

 

 

어느 순간 내 이름이 불렸고, 나는 단상으로

 

나갔다.

 

 

내 삶의 새로운 내용이 비로소 형식을 통해 시

 

작되고 있었다.

 

 

마치 결혼하여 다른 남자는 쳐다보아서 안되

 

는 성혼서약처럼, 떨렸고 엄중한 책임을 느끼

 

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모든 식은 그토록 골이 나고 도망치고

 

싶어지는 것이었나보다.

 
 
이윤설·2006년도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입력 : 2006.04.03 23:43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