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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선열

신오덕 2006. 6. 13. 13:05

 

[이덕일 사랑] 無名先烈

 


중국 길림성(吉林省) 통화현
 
(通化縣) 부강향(富强鄕) 근
 
처에 7기의 묘역이 있다.
 
 
승대언(承大彦) 형제와 조동
 
호(趙東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무덤이
 
다.
 
 
이들은 일제가 청산리 대첩에 대한 보복으로
 
만주 일대의 우리 동포들을 무차별 학살한 경
 
신대참변(庚申大慘變·1920) 때 희생되었다.
 
 
이들 중 5명은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로서, 졸
 
업 후 1~2년 동안 봉사한다는 학교 규칙에 따
 
라 교사로서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다가 학살당
 
한 것이다.
 
 
몇 년 전 이 묘역을 찾다가 길을 잘못 들어 한
 
노인에게 길을 물었다.
 
 
공교롭게도 중국 교포였던 노인은 먼 산을 가
 
리키며 “저 산에도 한국독립군들의 무덤이 여
 
럿 있다”고 일러주었다.
 
 
일행이 있고 일정에 쫓겨서 그 무덤을 찾아 고
 
량주라도 한 잔 올리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도
 
마음속에 큰 빚으로 남아 있다.

 

 

1964년 중동부 전선의 백암산 비무장지대에서

 

육군 소위 한명희는 잡초가 우거진 산모퉁이

 

에서 이끼 낀 채 허물어져 있는 돌무덤을 발견

 

했다.

 

 

녹슨 철모가 뒹구는 무덤 머리에는 십자가 모

 

양의 비목이 세워져 있었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으로 시작하는

 

가곡 ‘비목(碑木)’은 이렇게 탄생한 무명용사

 

에게 바치는 헌시(獻詩)이다.

 

 

불가리아 출신의 프랑스 샹송 가수 실비 바르

 

탕은 ‘무명용사(Les Hommes)’에서 “그대는 한

 

줌의 연기로 산화했지만 역사는 그대를 기억

 

하고 사람들은 그대를 찬양할 것이다”라고 노

 

래한다.

 

 

우리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미국의 전몰장병기

 

념일(戰歿將兵記念日·Memorial Day)의 가장

 

중요한 행사는 워싱턴에 있는 알링턴 국립묘

 

지의 무명용사들 무덤에 헌화하는 것이다.

 

 

당초 무명용사 비에는 “여기에 오직 하나님만

 

알고 계신 미국의 용사가 영광 속에서 쉬고 있

 

다”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또 모스크바의 붉은광장 부근에는 무명용사들

 

을 기리는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

 

 

모스크바의 젊은이들은 결혼식을 마치면 가장

 

먼저 이곳을 찾아 헌화한다.

 

 

우리를 위해 죽어간 이름 없는 사람들을 기억

 

하는 것.

 

 

국가 정체성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름을 남긴 선열(先烈)조차 기억하지 않는 우

 

리 사회는 그래서 부끄럽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newhis19@chosun.com
 
입력 : 2006.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