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철과 신념

역사의 흔적 본문

부자

역사의 흔적

신오덕 2006. 7. 13. 17:43

 

 

 

[일사일언] 역사의 흔적


 
 
우리는 과거를 딛고 현재에 서 있다. 미래를 사
 
는 후손도 우리를 딛고 서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를 피부로 실감한 적이 있다.

 

 

 

2003년 필자는 청계천 복원공사에 발굴팀장으

 

로 참여했다.

 

 

 

코를 틀어막아도 스멀거리는 썩은 냄새를 온몸

 

으로 맡으며 진행한 발굴이었다.


 

 

 


애초 발굴을 맡을 때는

 

‘말만 많고 학문적으로

 

는 별 건질 것 없는 발

 

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도성을 침입한 임꺽정

 

이 수문(水門) 창살을

 

뚫고 빠져나갔다는 설화가 녹은 오간수문과 수

 

표교, 광통교의 흔적은 그곳에 오롯이 남아 있었

 

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서울

 

의 현 도심이 조선 초기보다 2m 정도 높아졌다

 

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오래된 시대일수록 현 지표보다 깊은 곳에 자리

 

한다.

 

 

 

지진이나 땅의 융기 등 극심한 지각변동이 없는

 

한 그렇다.

 

 

 

청계천도 그랬다.

 

 

 

청계천에 범람이 잦자 조선의 명군주 영조는 청

 

계천을 대대적으로 보수했다.

 

 

 

그 보수 흔적을 발굴로 찾은 결과, 현 지표보다

 

50cm 가량 낮았다.

 

 

 

좀더 깊게 파 보니 한양을 수도로 건설할 당시

 

청계천을 정비한 흔적은 지금 지표보다 2m 정도

 

아래에 존재했다.

 

 

 

종로구 사직동이나 청진동 일대 재개발부지 발

 

굴을 통해서도 현 지표보다 2m 아래에 조선 초

 

기인들의 삶의 흔적이 확인되고 있다.

 

 

 

유적의 평균 높이가 계속 높아지는 것은 결국 우

 

리가 선조들의 유적을 딛고 살기 때문이다.

 

 

 

 

▲ 홍지윤 중앙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팀장

복개도로 아래로 흐르던 청계

 

천은 이제 도심의 휴식처가 됐

 

다.

 

 

 

많은 이들이 청계천을 걸으며

 

일상을 즐긴다.

 

 

 

한가지만 부탁드리고 싶다.

 

우리의 발걸음은 결국 우리 선

 

조들의 경험 위에서만 존재하

 

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역사는 지울 수도, 쉽게 청산

 

할 수도 없는 ‘실존’의 대상물이라는 사실 말이

 

다.

 
 
홍지윤·중앙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팀장
 
입력 : 2006.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