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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철과 신념
역사의 흔적 본문
[일사일언] 역사의 흔적
2003년 필자는 청계천 복원공사에 발굴팀장으
로 참여했다.
코를 틀어막아도 스멀거리는 썩은 냄새를 온몸
으로 맡으며 진행한 발굴이었다.
|
애초 발굴을 맡을 때는
‘말만 많고 학문적으로
는 별 건질 것 없는 발
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도성을 침입한 임꺽정
이 수문(水門) 창살을
뚫고 빠져나갔다는 설화가 녹은 오간수문과 수
표교, 광통교의 흔적은 그곳에 오롯이 남아 있었
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서울
의 현 도심이 조선 초기보다 2m 정도 높아졌다
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오래된 시대일수록 현 지표보다 깊은 곳에 자리
한다.
지진이나 땅의 융기 등 극심한 지각변동이 없는
한 그렇다.
청계천도 그랬다.
청계천에 범람이 잦자 조선의 명군주 영조는 청
계천을 대대적으로 보수했다.
그 보수 흔적을 발굴로 찾은 결과, 현 지표보다
50cm 가량 낮았다.
좀더 깊게 파 보니 한양을 수도로 건설할 당시
청계천을 정비한 흔적은 지금 지표보다 2m 정도
아래에 존재했다.
종로구 사직동이나 청진동 일대 재개발부지 발
굴을 통해서도 현 지표보다 2m 아래에 조선 초
기인들의 삶의 흔적이 확인되고 있다.
유적의 평균 높이가 계속 높아지는 것은 결국 우
리가 선조들의 유적을 딛고 살기 때문이다.
|
복개도로 아래로 흐르던 청계
천은 이제 도심의 휴식처가 됐
다.
많은 이들이 청계천을 걸으며
일상을 즐긴다.
한가지만 부탁드리고 싶다.
우리의 발걸음은 결국 우리 선
조들의 경험 위에서만 존재하
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역사는 지울 수도, 쉽게 청산
할 수도 없는 ‘실존’의 대상물이라는 사실 말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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