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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 만해축전과 시조

신오덕 2006. 8. 22. 17:45

 

 

[이덕일사랑] 백담사 만해축전과 시조

 


1906년 7월 21일자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대구
 
여사(大丘女史)의 ‘혈죽가(血竹歌)’가 현대 시조
 
의 기점이라니 올해로 꼭 100년이다. 자결한 민
 
영환(閔泳煥)의 충정을 그리는, “협실의 솟은 대
 
는 충정공 혈적이라”로 시작되는 ‘혈죽가’가 ‘흉
 
중(胸中)에 불이 나니 오장(五臟)이 다 탄다’로
 
시작되는 조선 중기 박태보(朴泰輔)를 비롯한 수
 
많은 충절가 등과 내용과 형식의 어떤 차이 때문
 
에 현대시조의 기점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시조 자체는 2세기 때 고구려 을파소(乙巴素)의
 
“월(越) 상국(相國) 범소백(范少伯)이 명수공성
 
(名遂功成) 못할 전(前)에…”라는 작품이나 7세
 
기 때 신라 설총(薛聰)의 “인심은 터가 되고 효
 
제충신 기둥되어…”라는 노래가 박효관(朴孝寬)
 
이 편찬한 ‘가곡원류(歌曲源流)’에 실려 있는 데
 
서 알 수 있는 것처럼 1500년 세월을 훌쩍 뛰어
 
넘는 민족의 노래였다.
 

 

 

작자의 신분도 “청강(淸江)에 비 듣는 소리 그

 

무엇이 우습건대···두어라 춘풍(春風)이 몇 날이

 

리 우슬대로 웃어라”라고 노래한 국왕 효종(孝

 

宗)부터 “말 없는 청산이요 태(態) 없는 유수(流

 

水)로다…”라는 유학자 성혼(成渾)을 비롯해 “산

 

촌에 밤이 드니 먼 데 개 짖어온다… 저 개야 공

 

산(空山) 잠든 달을 짖어 무삼하리요”라는 영조

 

때 기생 천금(千錦)에 이르기까지 구분이 없었

 

다.

 

 

소재도 김천택(金天澤)의 “부생(浮生)이 꿈이거

 

늘 공명이 아랑곳가…”라며 인생의 부질없음을

 

노래하기도 하고 기생 명옥(明玉)의 “꿈에 뵈는

 

임이 신의 없다 하건마는/ 탐탐(耽耽)이 그리울

 

제 꿈 아니면 어이보리…”라는 연정(戀情)에서

 

“벼 베어 소에게 싣고 고기 건져 아이 주며…”라

 

는 노동요까지 제한이 없었다.

 

 

 

만해축전의 일환으로 12일 백담사에서 ‘현대시

 

조 100년 세계민족시대회’가 열린다. 한용운(韓

 

龍雲) 역시 “봄 물보다 깊으니라 가을 산보다 높

 

으니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만 말하

 

리”라는 절창 ‘사랑’을 지었던 시인이었다.

 

가장 민족적인 시조가 세계인이 공감하는 노래

 

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
입력 : 2006.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