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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철과 신념
풍전등화 속에서도 생존하라 본문
[역사의 향기] 우금치(牛禁峙) 전투 | |
기사입력 2014.11.04 17:14:18 | 최종수정 2014.11.04 19:10:39 |
그는 삼례에서 동학군 전체를 모은 뒤, 공주를 넘어 수원으로 진격하고 마침내 서울로 가서 일본군과 최후의 대결을 벌이기로 했다. 그리고 한 달 뒤 논산에서 손병희의 군대 2만여 명과 합류한 전봉준은 공주로 진격하기 위해 주미산의 우금치(牛禁峙) 고개로 향했다. 계룡산 자락인 주미산의 우금치는 ‘소가 넘어가기 힘든 고개’라는 이름이 붙어 있을 정도로 험준한 고개였다. 하지만 전봉준과 손병희의 군대가 우금치에 도착했을 때는 일본군과 관군이 먼저 고개 정상에 포진하고 있었다. 그것은 고종과 조정대신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에게 동학군을 무찔러 달라는 요청을 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동학군은 동학농민전쟁의 주역 중 한 명인 김개남의 군대를 기다리다 그가 끝내 오지 않자 뒤늦게 우금치로 향해 고지를 선점당했다. 예상치 못한 외부 원조와 내부 분열이 조선의 운명을 건 승부에 악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의 화력은 대단했다. 동학농민군의 총은 심지에 불을 붙여 쓰는 화승총으로 사정거리가 100보에 불과하고, 분당 2발을 발사하는 수준이었다. 그마저도 갖지 못한 사람은 죽창으로 싸워야만 했다. 그에 반해 일본군은 사정거리만 400~500보가 넘고 분당 12발을 쏠 수 있는 소총에다 막강한 화력의 미국제 개틀링 기관포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결국 우금치 전투는 동학군의 처절한 패배로 끝났고 동학농민전쟁은 막을 내렸다. 올해는 동학농민전쟁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바로 11월이 동학농민전쟁의 마지막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된 시기이기도 하다. ‘척양척왜(斥洋斥倭)’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기치를 들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그들의 정신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김준혁 한신대 正祖교양대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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