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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근무의 매력을 점검하고 시행하라

신오덕 2014. 12. 12. 11:45

출퇴근 근로자 마음대로… 오후 3시에도 사무실 곳곳 ‘텅텅’

유성열기자

 

입력 2014-12-12 03:00:00 수정 2014-12-12 03:30:16

[저녁을 돌려주세요](12) 獨강소기업 페르비트社의 유연근무제

《 지난달 7일 오후 3시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트로싱겐 시의 ‘페르비트(Perbit)’ 빌딩.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었지만 사무실 곳곳이 비어 있었고, 일하는 직원은 10명이 채 안 됐다.

 

회사 관계자는 “시간선택제 근로자들이 모두 퇴근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도시 곳곳도 이미 하루 일과가 끝난 듯 한산해 보였다. 거리를 걷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1983년 인사관리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로 창립해 독일의 강소기업으로 성장한 이 회사의 직원은 총 75명. 이 가운데 50%가 시간제 근로를 하고 있고, 여성 근로자의 비율은 40%에 이른다.

 

육아, 학업, 간병 등 본인 사정에 따라 시간제 근무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또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지 전일제로 전환할 수 있다. 이처럼 최근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환형 시간선택제’ 근로 모델을 1980년대부터 이미 구축한 회사가 바로 페르비트다. 》     
        

 

독일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페르비트는 직원의 절반이 시간선택제 근무를 하고 있다.

 

위쪽 사진은 지난달 7일 오후 3시경 시간선택제로 일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이미 퇴근해 자리가 비어 있는 모습. (아래 사진)페르비트는 직원들의 건강을 고려해 높낮이가 조절되는 책상을 설치했다. 트로싱겐=유성열 기자 ryu@donga.com
○ 이 회사는 임원도 시간제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다니엘 뎅글러 씨(32)는 하루 4시간만 근무하는 시간제 근로를 하고 있다. 한 살과 세 살인 두 아이를 양육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좀 더 많이 보내기 위해서다. 4시간만 근무하는 만큼 소득도 일부 줄었지만 정부가 지급하는 양육보조금과 회사가 지원하는 가족수당 등을 받으면 전일제로 근무할 때와 큰 차이가 없다.

뎅글러 씨는 “유치원, 초등학교 교사들이 거의 여성이라서 남성 어른과의 접촉이 많지 않아 아빠인 내가 육아를 좀 더 책임지기로 했다”며 “돈과 직장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가족이기 때문에 시간제 근로를 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일제 전환 여부에 대해서도 “아이가 크는 것을 봐가면서 신중히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페르비트의 시간제 근로는 본인 희망에 따라 4, 5, 6시간 등 자유롭게 선택이 가능하다. 출퇴근시간 역시 본인 자유다. 이 회사는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을 관리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독일에서 큰 성공을 거뒀지만 정작 자신들은 근태 관리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일부 임원조차 시간제 근로를 하는 회사다. 설립 때부터 ‘신뢰’를 회사의 가장 큰 가치로 설정하고, 가족친화적인 문화를 구축해온 결과다.

설립자인 힐데 후를레만 씨는 예전에 근무하던 회사에서 다양한 일 가정 양립 프로그램을 경험한 뒤 페르비트에도 적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독일의 국민성이 원래 딱딱하고 엄격한 것이 특징인데 내가 다녔던 회사는 유독 근태가 자유로웠고, 창의성이 높았다”며 “소프트웨어 회사인 만큼 창의성과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다양한 유연근무제를 도입했고, 지금도 근태 관리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개발 총책임자인 요하나 스퇴어 씨(54)는 1991년부터 이 회사에서 일했다. 가사와 출산, 육아 등을 병행하면서도 시간제 근로를 통해 23년을 근무할 수 있었던 것.

 

특히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출근시간을 단축하고, 18세인 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1주일에 이틀은 재택근무(8시간)를 하고, 사흘은 시간제 근무(하루 4시간)를 한다. 스퇴어 씨는 “회사가 유연근무를 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해줬기에 이렇게 오래 다닐 수 있었다”며 “여성이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지 않으려면 유연근무제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 시간제로 18개 일자리 신규 창출

이처럼 다양한 유연근무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페르비트도 회의 등 대면업무가 필요할 때가 분명 있다. 이럴 때는 사전에 각 직원의 근무 시간과 장소 등을 충분히 협의해서 정한다. 또 시간제 근로를 한다고 해서 승진이나 성과 등에서 차별을 받는 사례도 전혀 없다.



페르비트는 직급 체계도 부문 책임자와 팀 책임자 등 간부직을 두 단계밖에 두지 않아 직원들 간 조직문화가 매우 수평적이다. 특히 직원들에 대한 성과 평가는 매년 하고 있지만 성과 평가에 따른 평가 등급은 판매부서를 제외하고는 매기지 않는다.

페르비트의 이 같은 유연근무제는 총 18명의 일자리를 신규 창출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원래 모든 직원이 전일제로 근무한다면 57명만 있어도 되지만, 시간제 근로를 폭넓게 운영하면서 직원을 75명까지 늘릴 수 있었던 것이다.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일 가정 양립을 넘어서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때문에 독일의 일 가정 양립 지원 재단인 헤르티 재단은 2005년 페르비트에 일 가정 양립상을 수여했다. 이 상은 독일에서 권위 있는 상 가운데 하나로 많은 기업이 이 상을 받기 위해 매년 치열하게 경쟁한다. 특히 페르비트는 2005년 수상한 이후 3년마다 엄격한 심사를 통해 진행되고 있는 추가 인증 과정도 여태껏 모두 통과했다. 중소기업이면서도 대기업 못지않게 유연근무제를 과감하게 운영해온 것을 인정받은 것이다.

후를레만 씨는 “직원들이 매일매일 일상 속에서 만족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우리 회사의 이런 점이 널리 알려지면서 좀 더 능력 있는 직원이 몰려들었고, 이에 따라 생산성은 당연히 높아지는 시너지 효과가 생기면서 회사도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유연근무 도입후 결근-이직률 ‘제로’… 비용절감 큰 효과”



인사책임자 크뤼거씨


“일과 가정의 양립은 비용 증가가 아니라 비용 절감을 위한 정책입니다.”

페르비트의 인사책임자인 리사 크뤼거 씨(사진)는 “보통 유연근무제를 시행하면 추가 비용이 많이 든다고 오해한다”며 “실제로 통계를 내보면 인력 채용 비용이나 인사관리 비용이 줄면서 회사의 전체 비용은 크게 감소한다”고 말했다.

―유연근무제를 하면서도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비결은….


“독일에 3개 지사가 있다. 각 지역에서도 우리 회사의 일 가정 양립 프로그램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그래야 우수한 인력이 우리 회사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인력의 전문성이 가장 중요하다. 우수한 인력만 확보된다면 생산성은 당연히 올라간다.”

―다양한 형태의 유연근무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스스로 근로시간을 결정하고,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이 일 가정 양립을 위해서는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있어야 일도, 가정도 챙길 수 있는 것 아닌가.”

―근태 관리를 하지 않으면 곤란하지 않나.


“우리는 신뢰에 기초를 두고 회사를 운영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누가 출근하는지, 누가 퇴근하는지는 서로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어느 날은 집에서 근무를 해도 되고, 어느 날은 회사로 나와도 된다. 전적으로 본인 자유다. 각자의 개인 책임으로, 각자의 자율로 해야 능률이 오르는 것 아닌가. 이런 인사 관리로 문제가 생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게 바로 우리 회사가 갖고 있는 신뢰의 힘이다.”

―유연근무제 시행 이후 비용이 얼마나 줄었나.


“결근일수와 이직률이 거의 0%다. 이 때문에 인사 관리 비용, 직원 채용 관련 비용이 매우 낮다. 이직률이 높으면 또 다른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직원들 모두 본인이 약속한 근로시간은 100% 채우고 있다. 그런 유형, 무형의 비용까지 생각해보면 유연근무제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는 엄청나다.”
―한국은 일도 많이 하고, 가정도 챙기기 어렵다. 어떻게 해야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나.

“근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과 위치다. 근로자들의 시간과 위치를 확보하고 지원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유연근무제와 재택근무제, 자율 출퇴근시간제 등을 우리도 핵심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여기에 보육시설 등이 함께 뒷받침된다면 일 가정 양립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경영자들이 근로자들을 신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