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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아무런 감정없이 누군가의 일상을 지켜본다

신오덕 2015. 7. 30. 12:46

 

돈,불안,자기 협오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용의자 X의 헌신>의 히가시노 게이코, <화차>의 미야베 미유키, <고백>의 미나토 가나에와 함께 현재 일본 문학계에서 서스펜스물 작가군 중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 있는 가쿠다 미쓰요의 원작이라는 점과 1991년 19세의 나이로 <산타페>라는 누드집에서 눈부신 미모를 뽐냈던 미야자와 리에가 출연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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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의 눈처럼 아무런 감정 없이 누군가의 일상을 지켜본다. 그리고 그 반복되고 평범한 일상에 숨겨진 미세한 진동- 불안, 걱정, 일탈, 분노 -의 감정들이 드러나면 예리한 면도칼로 그 단면을 베어낸다. 그런데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베인 자 역시 자신의 몸에 칼이 지나간 감각조차 느끼지 못한다.

 

가쿠다 미쓰요의 글 솜씨이다. 그녀가 만들어낸 영화 속 41세의 주인공은 너무나 평범한 삶, 게다가 약간의 정의감까지 갖추고 있어 이야기는 파급력있게 흘러간다.

 

1억 엔이라는 거금을 횡령하고 태국으로 도피한 우메자와 리카(미야자와 리에). 그녀의 이야기가 뉴스로 나오자 친구들은 자신이 알던 리카를 말하기 시작한다. 여고동창생, 요리강습 교실 친구 그리고 옛 남자친구 등이다. 그들은 너무나 평화롭지만 조금은 지루한 일상을 살고 있던 평범한 주부 리카의 이런 큰 변화와 일탈을 전혀 짐작지 못했다고 말한다. 결혼 후 남편과 그저 그런 평화를 유지하던 리카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은행의 계약직 사원이 된다. 미모와 다정한 성품으로 고객들의 신임을 얻게 되자 점점 자신감을 되찾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외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백화점을 들른 리카는 계획에 없던 화장품을 구매한다. 가지고 있던 돈이 부족했던 리카는 고객의 예금에서 1만 엔을 꺼내 결제하고 백화점을 나서자마자, 바로 은행을 찾아 그 돈을 채워 놓는다. 하지만 이는 그녀의 일상에 작은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리카는 고객의 손자인 대학생 코타와 인사를 나누게 된다. 학비가 없어 휴학할 위기에 처한 그를 안타깝게 생각한 리카는 도움을 주기 위해 또 고객의 예금에 손을 댄다. 200만 엔 그리고 300만 엔…. 점차 돈은 늘어나고 리카는 자신이 돌아가야 할 자리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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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평범한 주부가 연하의 애인과 즐기기 위해, 혹은 자신을 위한 위안으로, 또는 원 없이 돈을 써보고 싶은 소비중독에 가까운 유혹에 넘어가 그 같은 횡령을 저질렀다, 고 단정 짓지 않는다. 리카의 일탈은 마음 속 깊은 내면에 숨겨져 있던 불안과 삶에 대한 불만족이 현실에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표출되는 것을 묘사한다. 90년대 버블경제 막바지의 일본 사회를 억누르던 돈에 대한 환상, 그것이 점차 세대 간의 갈등으로도 유발되는, 돈의 악마적 파급력을 영화는 주부의 일탈로 대신한다.

이를테면 리카의 옛일을 증언하던 3명의 사람들조차, 리카를 말하지만 돈에 휘둘리고, 소비파탄으로 이혼지경에 빠지는 등 심각한 자기혐오의 슬픈 자기고백을 말하고 있다. 리카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제목에서 암시한다.


종이 달은 일본의 사진관에서 장식으로 초승달을 붙여놓고 그 밑에서 사진을 찍은 것에서 유래한다. 가족, 연인들과의 행복했던 시절, 일종의 ‘내 인생의 화양연화’를 상징하지만 실체가 없는 행복의 상징일 수도 있다. 팽팽한 긴장감과 손의 가느다란 주름 그리고 솜털의 움직임마저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원작의 힘을 화면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돈, 참으로 좋은 것이지만 허망한 종이쪽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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