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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게 대처하고 나아가라

신오덕 2015. 8. 4. 10:13
[매경데스크] 韓기업 롯데, 경영 잘할 리더에게
기사입력 2015.08.03 17:22:43 | 최종수정 2015.08.03 20: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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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민 여러분, 죄송하무니다."

60여 년간 일본에서 살아온 롯데가(家)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은 2일 한 방송사와 인터뷰하면서 말미에 어눌한 한국말로 대국민 사과 메시지를 전했다. "국적만 한국이지 일본인 어머니에게서 나서 평생 일본에서 자랐고, 우리말도 한마디 못한다면 사실상 일본인 아니냐." 귀국 직후 한 방송사와 진행한 인터뷰는 물론 부친과 나눈 육성 대화록이라며 언론사에 제공한 녹음 파일도 온통 일본어 일색이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이런 비난 글이 쇄도했다. 예전 홍보 경력을 바탕으로 신 전 부회장 책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모 기업인 코치를 받아 서툰 한국말 클로징을 한 것인지는 몰라도 결과는 그다지 신통치 않은 것 같다. 전형적인 일본인의 한국어 말투여서 오히려 일본인 이미지만 더 굳혔다는 평이 우세하다.

물론 롯데가의 경영권 분쟁을 이런 감정이나 이미지 문제로 다룰 사안은 아니다. 냉정하게는 한·일 양국에서 법적으로 누가 더 절차적 정당성을 갖느냐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부친이 차남 쪽 인사들을 해임하기 위해 자필 서명했다는 서면지시서 같은 것은 법정에선 휴지 조각 취급을 받을지 모른다. 차남을 한국 회장에 임명한 적이 없고, 용서하지 않겠다는 육성 녹음도 증거능력을 가질지 의문이다. 아무리 최대주주이자 한·일 롯데 총괄회장이라고 해도 이사회나 주주총회 같은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구두 지시는 그야말로 의중일 뿐이다. 그마저 4년 전 본인 손으로 차남을 한국 롯데 회장으로 임명한 사실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니 법정에 간다 해도 건강 문제가 도마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한·일 롯데 경영권 향배에서 법적으로 의미 있는 것은 앞으로 열릴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나 이사회 정도일 것이다. 따라서 형제 중 누가 더 우호 지분을 많이 확보냈는지, 아직 부친이나 모친이 보유 중인 핵심 지주사 지분을 누구에게 더 많이 나눠줄지는 솔직히 시간을 두고 지켜볼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법적인 지분 문제 이전에 먼저 따져봐야 할 대목이 있다. 형제 중 `과연 누가 더 롯데그룹을 잘 경영할 것인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다. 누가 더 아버지 비위를 잘 맞추느냐가 아니라 롯데그룹, 더 나아가 대한민국 국익에 기여할 수 있을지를 면밀히 짚어봐야 한다는 얘기다.

재계 순위 5위라는 오늘날의 한국 롯데를 만든 데는 부친 못지않게 차남 신동빈 회장의 공이 크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신 회장은 2004년 롯데그룹 정책본부장을 맡은 이후 12년째 사실상 한국 롯데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가늘고 길게`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진격의 롯데`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굵직한 인수·합병(M&A)과 상장을 잇달아 성사시켰다. 덕분에 2004년 23조원이었던 한국 롯데 매출은 지난해 83조원으로 3배나 껑충 뛰었다. 80여 개 계열사가 일자리 18만개를 만들어냈고, 한 해에만 수천억 원대 법인세를 내고 있다.

반면 신동주 전 부회장이 지난해까지 10년 이상 이끌었던 일본 롯데는 그야말로 저성장의 늪을 헤맸다. 2013년 기준 일본 롯데 전체 매출은 5조원대로 한국 롯데 대비 18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주력 산업도 여전히 제과에 머물러 신성장동력을 못 찾고 있다. 비교적 튼튼한 실적을 보여왔던 롯데제과마저 최근 적자로 돌아섰고, 일본 제과업계 순위에서도 2위로 밀려났다.

물론 양국 경영 성과가 이렇게 차이 난다고 해서 차남에게 한·일 롯데를 몰아주는 건 과한 것 아니냐는 여론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일본 롯데 지주사들이 한국 롯데를 지배하고 있다는 소유 논리만으로 한국 롯데 경영권까지 넘보겠다는 건 더욱 정도가 아니라는 목소리가 우세하다. 수십 년 전 일본에서 시드머니가 건너왔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롯데는 한국 기업이라는 점이다. 신동빈 회장이 "매출의 95%를 차지하니 롯데는 한국 기업"이라고 못 박은 게 그래서 의미가 깊다.

[설진훈 유통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