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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환경의 변화를 빠르게 읽고 나아가라

신오덕 2015. 8. 12. 12:42
[기고] `빈손 방북`과 목함지뢰, 남북관계 돌파구 없나
기사입력 2015.08.10 17:41:36 | 최종수정 2015.08.10 20: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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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역대 대통령 선호도 조사를 하게 되면, 대부분 1등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고, 2등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차지하곤 한다. 우리 국민은 과거 지도자들 중에서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물꼬를 튼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장 먼저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고, 최대 치적인 남북관계의 발전과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이 높이 평가받았다고 생각한다.

이희호 여사의 소위 `빈손 방북`을 둘러싼 논쟁이 일고 있다. 이 여사는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 존재하지 않고, 김 전 대통령과 이미지를 공유하면서, 우리 국민 중에서 일정한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들의 북한관(觀)을 대변하고 있다. 이번 방북을 계기로 경색된 남북관계에 변화를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물거품이 되는 듯하고, 무엇보다도 초청 주체였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의 면담이 이뤄지지 않은 점에 대해서 의아해하고 있다. 빈손 방북의 실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으로 연결된다. 왜 김정은은 이 여사를 만나지 않았을까? 우리의 대다수 국민은 이번 방북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마지막으로, 앞으로 남북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첫째, 김정은의 계산을 정확하게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이 여사와의 면담이 성사되지 않은 것을 통해 우리 정부에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하나는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 전반에 대한 불만 표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좀 더 기다린다면 북한에 유리한 대외환경의 기회가 온다는 계산인 듯하다. 후자의 경우 최근 북·중 관계가 미세하지만 변화의 조짐을 보이면서 조만간 외교적 입지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오판이다. 북한은 이 여사로 대변되는 우리 내부의 대북한 관여주의자들과의 의사소통 채널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있어야 하고, 또한 대외환경은 어느 한 단면이 아닌 동북아 판 전체가 움직이는 그림을 이해해야만 한다.

둘째, 이 여사의 방북을 지켜보면서 우리 국민은 어떤 생각에 잠겼을까? 최근 5년 사이, 그러니까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이후 우리 국민의 대북인식은 과거에 비해 훨씬 강경해진 것이 사실이다. 손자뻘 되는 김 위원장이 아버지 김정일이 극진히 대접했던 이 여사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모습을 연출했다면 우리 국민은 조금이나마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북한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려고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우리 국민 누구로부터도 마음을 사거나 이해를 구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북한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셋째, 이제 앞으로 남북관계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남북관계 개선은 더 많은 노력과 정성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제는 작은 처방과 접근보다는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전제가 되는 타개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더욱이 지난 4일 발생한 북한의 목함지뢰 사건과 우리 병사의 부상은 북한에 대한 우리의 신뢰와 기대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아버지와 달라진 김정은, 최소한의 관용마저 포기한 리더십, 그리고 더욱 움츠러들고 있는 북한을 상대로 대북정책의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할 때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한·일 간에는 8·15 메시지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외교전이 전개되고, 중국은 전례가 없는 전승절 행사를 준비 중이다. 이 틈을 타고 북한이 혹여라도 시간은 자기 편이라고 생각하거나 본인들이 상황의 흐름을 주도하고 선택하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결국 그러한 근시안적 안목의 피해는 고스란히 북한 주민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 여사의 빈손 방북이 남북관계의 먹구름이 아니라 새로운 교훈을 안겨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