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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지원장으로 근무시절을 점검하라

신오덕 2015. 8. 13. 10:24
[매경춘추] 내일 일을 누가 알랴?
기사입력 2015.08.12 17:27:22 | 최종수정 2015.08.12 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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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10년 전 우리나라 법원 중 경관이 가장 뛰어난 법원의 지원장으로 근무하였다. 바다에서 100m도 안 되는 곳에 법원 청사가 있다. 본래 호텔 용지였다고 한다. 그야말로 그림 같다. 다른 법원 판사들을 만나면 "거기는 지원장실에서 바다로 바로 낚시 던져도 된다며?" 하는 농담 반, 부러움 반인 질문을 받곤 하였다. 사무실에 들어설 때마다 `내가 뭘 잘한 게 있다고 이런 사무실을 쓰는 복을 누릴까?` 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2년을 살았다.

부임해서 바로 시작한 일이 교양문고 설치였다. 선발 문고의 지원을 받기도 하고 여러 곳에서 책을 기증받았다. 모두 그곳과 연고가 있는 분들로부터 책을 기증받았는데 단 한 사람 예외가 있었다. 가방에 책을 여러 권 넣고 다니다가 후배들을 만나면 책을 나눠 주는 것이 `취미`인 선배 법관이었다. 그래도 그곳과는 아무 연고가 없는 분이라 너무 염치없어서 안 보시는 헌책 있으면 몇 권 보내달라고 조심조심 메일로 부탁하였다. 그런데 소문답게 연락을 받자마자 새 책 수십 권을 택배로 보내주었다. 아쉬운 소리 하며 부탁하였는데도 감감무소식인 분들도 있어서 낙심하고 있었는데 너무 반갑고 감사했다. 결국 필자가 꿈꾸던 대로 바다를 바라보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교양문고를 설치하게 되었다. 도와준 분들께 일일이 감사 인사를 드렸지만 그 선배께는 특별히 깊이깊이 감사의 편지를 드렸다.

그런데 사람 일을 누가 알겠는가? 2년 뒤 바로 그분이 필자의 후임 지원장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전혀 예상 밖의 인사였다. 법원의 일반적 인사 패턴으로 볼 때 필자보다 한참 선배인 그분이 후임 지원장으로 올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필자는 업무 인계인수를 위해 그 선배를 만나 농담으로 이렇게 말했다. "후임 지원장이 장차 부임할 법원의 교양문고에 책을 기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2년 전에 책 기부해 주셔서 고맙다고 필요 이상으로 깊이 감사드린 것은 취소합니다."

그 후 그는 부임하는 날부터 승용차에 책을 여러 박스 싣고 온 것을 비롯하여 필자가 모아 놓은 것보다 더 많은 책을 그 문고에 기증하고 갔다고 한다. 필자는 어느 자리에 가서 그 선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세상일을 이야기할 때마다 이 이야기를 하곤 한다. 사람 일을 누가 알겠는가? 내일 일을 누가 알랴?

[최인석 부산가정법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