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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

신오덕 2015. 8. 28. 10:22

[광화문에서/이현두]비디오와 합의

이현두 스포츠부장

입력 2015-08-28 03:00:00 수정 2015-08-28 03:00:00

이현두 스포츠부장

 

큰 덩치 때문에 야구장에서 코끼리로 불리는 김응용 전 한화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감독에 관련된 주요 기록을 갖고 있다. 전무후무한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을 포함해 최다 경기 출장, 최다 승리 등 김 전 감독이 세운 기록들은 모두 그가 오랜 기간 감독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다.

파리 목숨으로 비유되는 프로야구 감독 자리를 김 전 감독이 3개 팀을 옮겨 가며 24년 동안 지킬 수 있게 해 준 가장 큰 힘은 당연히 실력이었다. 하지만 “좋은 선수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운도 있었다”는 그의 말처럼 운이 따랐던 것 역시 사실이다.

프로야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기록도 마찬가지다. 실력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 당장 시즌 개막 1호 홈런만 해도 5개 구장에서 동시에 열리는 경기에서 어느 타자가 가장 먼저 홈런을 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운이 따르는 김 전 감독이 1년 전 한국 프로야구에서 의미 있는 첫 기록의 주인공이 된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김 전 감독은 한화 감독이었던 지난해 7월 24일 NC와의 경기에서 비디오판독을 요청했다. 한국 프로야구 1호다.

해태 감독 시절 김 전 감독은 더그아웃을 박차고 나와 심판을 밀어붙이며 거세게 항의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판정에 대한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선수들을 더그아웃으로 불러들인 뒤 경기를 하지 않겠다는 으름장을 놓는 일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김 전 감독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모든 감독에게 흔한 일이었고, 비디오판독이 도입되기 전까지 한 시즌에 적어도 몇 차례는 벌어지는 모습이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원인 제공자인 심판에 대한 팬들의 비난은 들끓었고, 그때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라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앞세운 반격에 논란은 한순간 없던 일이 돼버렸다.

하지만 비디오판독이 도입된 뒤에는 달라졌다. 애매한 판정에 대해 감독들이 비디오판독을 요청하게 된 뒤부터 심판 판정에 대한 항의로 경기가 30분 이상 중단되거나 ‘경기를 하네 못하네’라는 실랑이가 사라졌다(물론 판정에 대한 항의로 경기가 잠시 중단되는 경우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판정이 많이 바뀐 것은 아니다. 프로야구에 비디오판독이 도입된 이후 판정이 번복된 것은 38.6%다. 예전으로 치면 판정에 불만을 품은 감독의 항의가 10번 중 6번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경기 보이콧 으름장을 놓는 감독은 이제 더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 찰나의 순간에 벌어져 잘못 봤거나 보지 못했던 부분을 비디오가 천천히 다시 볼 수 있게 해 준 덕분이 크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비디오판독의 공식 명칭은 심판합의판정이다. 한 명의 심판이 내린 판정을 여러 명의 심판이 다시 비디오로 본 뒤 의견을 모아 판정을 내리는 것이다. 비디오 화면도 찍은 각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느린 비디오 화면으로도 아웃과 세이프를 판단하기 어려운 장면도 있다. 결국 최종 판정은 합의를 통해 결정되고, 감독들은 그 합의를 존중하는 것이다.

대법관 9명의 일치된 합의도 정략적 판결이라고 주장하는 정치인, 법관이 아닌 국민 배심원 7명이 모두 유죄라고 한 평결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교육감이 프로야구 감독들을 바보로 부를까 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