輕 악재 있어도 팀 분위기 경쾌
薄 주전-비주전 격차 얇아지고
短 젊은 선수 적응기간 짧아져
小 기용원칙 뚜렷해 불만 작아
자원이 많은 나라가 잘살 것 같지만, 실제로 이들 나라의 국민은 가난한 경우가 많다.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라고 한다. 재미있는 건 잘사는 나라들 중 상당수가 자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대단한 역설이다. 경영학의 대가 마이클 포터 교수(하버드대)는 경쟁력과 관련해 자원 그 자체보다 부족한 자원을 극복해내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경박단소(輕薄短小)’ 전략은 그가 언급한 대표 사례다.
일본은 천연자원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것을 가볍고(輕), 얇고(薄), 짧고(短), 작게(小) 만들었다.
이를 통해 자원과 공간을 절약했고, 그 경쟁력으로 수십 년간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보였다.
프로야구 KIA는 올해 하위권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했던 팀이었다. 지난해 9개 팀 중에서 8위였던 KIA는 자원 자체가 부족했다. 그나마 팀의 기둥이었던 안치홍(2루수)과 김선빈(유격수)까지 군에 입대했다.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 연습경기 전적이 9전 전패였다. 실점은 무려 103점이나 됐다.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KIA는 전혀 다른 팀이다. 가을잔치 초대장이 주어지는 5위를 호령하고 있다. 돈을 들여 전력을 보강한 게 아니다. 부족한 자원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남다른 경쟁력을 얻었다.
올해 취임 첫해인 KIA 김기태 감독(사진)은 없는 자원(선수)을 만들어냈다. 주목받지 못하던 2군 선수들을 재평가해 과감하게 실전에 투입했다. KIA에서 보통 한 해 1군을 경험하는 선수는 지난해까지 40명 정도였는데, 올해는 벌써 50명을 넘어섰다. 덜 여문 선수들을 기용하고도 성적이 오히려 상승했다는 점이 남다르다.
김 감독의 리더십이 조명 받는 부분이다. 김 감독은 선수의 ‘장점’을 부각시킨다. 공격과 수비가 약한 선수라도 “저 친구는 다리가 빠르니 요긴하게 기용할 수 있겠다”는 식으로 평가한다. 25일 SK전 연장 10회 대주자 고영우가 극적인 결승득점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다. 고영우는 타율이 1할도 안된다. 기존 문법으로는 1군에서 뛰기 어려운 선수다. 이렇게 없던 자원이 하나둘 생겼다. KIA 프런트조차 “우리 팀에 선수가 이렇게 많은지 미처 몰랐다”고 놀라워하고 있다.
김 감독의 손길을 거치면서 KIA는 ‘경박단소’하게 바뀌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주전 선수가 부상하면 분위기는 땅으로 가라앉을 듯 무거워졌고, 성적은 곧바로 추락했다. 하지만 올해는 ‘50억 FA’ 김주찬이 다쳐도 더그아웃 공기는 가볍고(輕), 성적도 경쾌하게 올라갔다. 주전과 비주전의 기량 차이가 그만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얇아진(薄) 것인데, 자신의 장점을 앞세운 젊은 선수들의 1군 적응 기간이 대폭 짧아진(短) 덕분이다.
특히 선수 기용의 원칙이 분명해지면서, 팀 내 불협화음의 크기가 작아져(小) 리더십이 붕괴될 가능성이 대폭 줄었다. KIA의 고질병이 사라진 것이다. 팀 관계자는 “감독-선수-구단의 관계가 이렇게 좋았던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직전 팀 LG에서 시행착오를 거친 덕분인지, 김 감독은 더욱 강단 있게 자신의 리더십을 밀어붙이고 있다. 김 감독은 내년까지 팀을 리빌딩하고, 2017년 거사(우승)를 목표로 하고 있다. 통산 10번이나 우승했지만, 최근 몇 년간 초라하게 무너졌던 KIA. 그 독이 든 성배를 집어든 김기태 감독의 ‘경박단소’ 리더십이 남다른 조명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