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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프리카의 땅끝 마을

신오덕 2006. 5. 22. 12:05
 

 

희망봉.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

나도 정작 남아공에 와서 한참이 지나도록 그런 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희망봉은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이 아니다.

케이프 반도 남서쪽의 최남단일 뿐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남아공은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이 많은데 희망봉 역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유명한 관광지이며 케이프타운의 상징이기도하다.

 

희망봉(good hope point)은 케이프타운의 최고 명물이고 상징인

테이블 마운틴 국립공원 중 케이프 포인트 지역에 속해 있고

케이프타운 시내에서 두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

시내를 통한다면 쉽게 희망봉에 이를 수 있지만 산등성이의 드라이브 코스를 택하면

굽이굽이 언덕을 돌 때마다 파도치는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는 즐거움을 더할 수도 있다.

산길을 오르다 보면 케이프 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관계로 산 아래로 옥빛 바다가

출렁이는 해안 도시를 끼고 달리는데, 높지 않은 산을 한 구비 넘으면

반도 동쪽의 굽이치는 대서양을 끼고 달리다가 다시 한 구비 넘으면

다시 반도 서쪽의 출렁이는 파도를 접하게 된다.

저 아래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기차가 서정적으로 느껴지고 마치 기적소리가

들려오는듯하다.

푸른 바다를 왼쪽으로 오른쪽을 휘감아 돌며 정상에 올랐다가 내리막을 달려

국립공원 지역으로 들어서면 자생 식물 군락지가 마치 초록 융단을 펼쳐놓은 듯

시야를 시원하게 한다.

 

영국 본토 내에서 자생하는 수목의 종류보다 더 많은 종류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는

테이블마운틴의 명성답게 온갖 종류의 fynbos(fine bush) 군락이 초록의 물결을

치며 저 멀리 대서양의 푸른 수평선과 함께 어우러진다.

꽃피는 계절에 찾으면 남아공의 국화인 화려하고 우아한 프로티(protea) 군락을

만날 수도 있고 우기에 찾는다면 더 찬란하게 빛나는 푸른 초원을 만날 법도 했다.

왜 세계의 수많은 식물학자들이 희망봉을 잊지 못하고 찾는지

그 이유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이곳에는 수많은 식물 군락지가 보존되어 있다.

 

시원한 바닷 바람과 함께 짠 냄새가 훅 코끝으로 밀려든다.

등대가 서 있는 제일 높은 곶인 케이프 포인트(cape point) 로 향하자면

오른쪽으로 희망봉 표시가 나오는데 그곳으로 내려가면 바로 반도 최남단인 희망봉이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케이프 포인트로 직행하고 정작 땅끝 희망봉에는 들르지 않는

경우도 많다지만 우리는 희망봉에 먼저 한발을 내딛기로 했다.

케이프 포인트는 희망봉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곳이지만

정작 희망봉은 마치 돌무더기를 쌓아놓은 듯이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이다.

희망봉 바닷가에 이르니 그 역사적인 곳에 발을 디뎠다는 감격이 밀려온다.

서경 18도 28분, 남위 34도 21분 이라고 쓴 푯말이 하나 서 있을 뿐 희망봉에

와 부딪치는 파도는 여늬 바닷가에 만나는 그 파도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 바닷물이 다르지 않다고 해서 희망봉이 다른 곳과 같은 의미를 가질까.

 

희망봉이 어디인가.

인도양을 항해하고 돌아가는 수많은 유럽 선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만난 곳.

이제 고향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희망을 가지게 했던 바로 그 곳이다.

바로 그 곳,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그 유명한 희망봉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있다.

푸른 대서양 수평선을 안고 수없이 부딪치는 파도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는 희망봉.

울컥 감동이 휘몰아친다.

사진 찍히는 것 싫어하는 우록이를 잡아 세우고 웬만해서는 피사체가 되지 않는 나도

역시 합세해 사진 가족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희망봉 푯말 앞에서 찍는 한 장의 기념 사진은 다른 어느 곳에서 찍는 사진보다 의미가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희망봉 그 바닷가에 서서  소박한 소망 하나,

우리가족 모두 케이프타운에 사는 동안 별탈 없이 건강하게 지내다

돌아갈 수 있기를 빌었다.

 

케이프 포인트는 희망봉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게 높은 곳에 위치한 또 하나의

곶으로 해발 87m에 1919년에 세워진 등대가 자리 잡고 있다.

원래 등대는 1860년에 해발 249m에 세워졌으나 너무 높은 곳에 있어 항해하는

배들이 인식하는 불편하고 난파하는 경우가 많아 낮은 곳에

새로운 등대를 건설했다고 한다.

정작 희망봉은 초라하고 관광객이 들르지 않고 지나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케이프 포인트는 등대가 있는 곳까지 외선 철도에 왕복 전동차가 운행되기도 한다.

각 대륙 주요 도시까지의 거리가 표시된 방향계 앞에 관광객들이 앞 다투어

사진 촬영을 한다. 남극까지의 거리가 6,248km를 선명하게 표시하고 있다.

등대가 서있는 옆 자리에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그곳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갔음을 증명하듯 많은 이름이 어지럽게 남겨져 있다.

한글이 눈에 띄어 가까이 살펴봤더니 평양에서 왔다는 리씨 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름이 선명히 남아있다.

아마도 가족이었을 법한 그 사람들도 역시 희망봉에 서서 작은 소망들을 빌었으리라.

어쩌면 이 먼 곳 희망봉에 우연히 조우를 했을 수도 있었을 법한 북한 사람들이 남긴

그 자국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헤아려 볼 수 없이 드넓은 수평선을 내려다보는 이 희망봉에서는 남과 북의

이념을 떠나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고 아프리카의 원시 희망을 담아

진짜 우리의 가장 큰 소원인 통일을 같이 기원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감상적인 생각을 해보았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진짜 땅끝 마을 아굴라스를 가는 길은 희망봉 가는 길과는

사뭇 다르다.

희망봉은 좁은 반도의 해안도로를 따라 백여 킬로미터의 사이클 경기가 열릴 만큼

아름다운 해안도로로 연결되어있다. 하지만 아굴라스는 끝없는 밀밭의 행렬을 지나고

색색의 열매를 달고 있는 과수원의 행렬을 지나고 시골길을 한참 달리다보면 만나게 된다.

제철에 지난다면 푸른 물결치는 밀밭의 풍광 또한 장관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희망봉과 달리 아굴라스에는 붐비는 관광객도 없고 기대와는 달리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마을이었다.

땅끝 마을임을 표시하는 기념비만이 우리가 대륙의 제일 땅 끝에 와 있음을 말해주었다.

“여러분은 지금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 땅끝 마을에 있습니다”

아프리칸스와 영어로 쓰여진 간단한 기념비와 그 밑에 인도양과 대서양이 교차한다는

화살표를 그려 두 바다가 만나는 곳이라는 표시를 해놓았다.

두 대양 표시를 한 표지판 위에 올라서니 감동이 밀려온다.

남성적이 대서양과 여성적인 인도양이 만나 수십 겹의 푸른 파도를 만들어내는 곳.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에 우리가 와 서있다.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고 있다고 하지만 두 바다 모두 은빛 물결을 찰랑이고

푸른 파도로 부서질 뿐 여늬 바다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대륙의 땅 끝, 두 대양이 만나 교차하는 곳에 서있다는 감동은

그 두 대양의 파도보다 높게 휘몰아친다.

두 대양을 내려다보고 있는 낮은 언덕 위에 그림 같이 자리 잡고 있는 등대 또한

아굴라스의 낭만을 훨씬 더해준다.

일년 내내 낚시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아굴라스의 작은 항구에는

늦은 저녁까지 낚시대를 드리운 한가로운 그림이 그려진다.

개인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낚시를 즐기다가 자동차에 트레일러를 연결해

요트를 끌고 가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해양도시인 웨스턴 케이프의 전형적인 모습을 또 한번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족과 함께 조용한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 묵었는데 뒷마당에 불 피워서

브라이를 하고, 또 하루의 아프리카의 지는 해를 땅끝 마을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인도양과 대서양 두 대양을 타오를듯 붉게 물들이면서 장엄하게 넘어가는

아프리카의 하루 해를 또 보내면서 내 인생의 어디에 아프리카가 숨어있었는지,

어찌 이렇게까지 먼 곳에 와 있게 되었는지 새삼스러운 하루였다.


                                 ----------------------------2006년 4월

출처 : 케이프타운 희망봉에서
글쓴이 : 유 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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