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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도

신오덕 2006. 12. 1. 13:09

 

 

[이덕일 사랑] 달마도

 


불교사의 수수께끼 인물
 
이 선종(禪宗)의 초조(初
 
祖) 달마대사(達磨大師)
 
이다.
 
서기 520년 인도에서 배편으로 중국에 와서 서기
 
528년 150세로 입적(入寂)했는데, ‘오등회원(五燈
 
會元)’에는 남천축국(南天竺國·남인도) 향지왕(香
 
至王)의 셋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140세 넘어 중국에 왔다는 사실 때문에 실존 인물
 
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달마와 양(梁) 무제(武帝)의 대화가 유명하다.

 

제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을 강의하고, 많은 불

 

사(佛事)를 일으켰던 군주였다.

 

 

무제가 자신의 불교 외호(外護) 경력을 거론하며

 

어느 정도의 공덕이 있겠느냐고 묻자, 달마는 “아

 

무 공덕이 없습니다[無功德]”라고 답해 충격을 주

 

었다.

 

 

무제가 “짐을 대하고 있는 자는 누구냐?”라고 묻

 

자 “모릅니다[不識]”라고 선문답하고는 자리를

 

떠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 가서 9년 동안 면

 

벽좌선했다고 전한다.

 

선종은 의발(衣鉢)을 전해 계승자를 삼는데, 달마

 

가 소림사에 있을 때 낙양인(洛陽人) 혜가(慧可)가

 

왼팔을 자르며 도(道)를 청하자 받아들여 이조(二

 

祖)가 된다.

 

 

일자무식이었으나 ‘돈오(頓悟)’로 유명한 혜능(慧

 

能)이 바로 육조(六祖)이다.

 

선종은 선문답으로 유명한데, ‘오등회원’조주(趙

 

州)편에는 한 승려가 조주선사에게 “달마대사가

 

왜 중국에 왔습니까?”라고 묻자 “뜰 앞의 잣나무

 

니라[庭前柏樹]”라고 대답한 것이 유명하다.

 

달마는 벽안호승(碧眼胡僧)이라는 특이한 용모 때

 

문에 그림으로 많이 그려졌는데, 조선중기 김명국

 

(金明國)의 달마도가 특히 유명하다.

 

 

송(宋)나라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는 “개경의 정국안화사(靖國安和寺)에 달마상이

 

있었다”고 전한다.

 

 

고려의 이규보(李奎報)는 ‘달마대사 상(像)에 대한

 

찬(贊)’에서 “전할 것은 마음이요/몸은 쓸모없다/

 

몸이 이미 떠났거늘/왜 반드시 그림을 그려야 하

 

나[可傳者心兮/無用者身/身已去矣/何必寫眞]”라

 

고 읊었다.

 

달마도가 복을 가져오고 수맥을 차단한다는 등의

 

소문이 돌면서 일부 구매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소

 

식이다.

 

 

이규보의 시에 보이는 것처럼 달마가 전한 것이

 

마음뿐이지 어찌 비현실적인 구복(求福)이겠는

 

가?

 
이덕일·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
 
입력 : 2006.11.23 22:43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