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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선택으로 부자가 되어라

신오덕 2007. 12. 11. 22:59

 

 

이재용에게 다가오는 결단의 시간


[한겨레] 삼성이 초대형 스캔들을 일으키며 그에게 넘겨주려 한 경영권…어차피 다 가질 수 없으면 과감히 털어버려야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어차피 ‘갈 길’이 정해져 있는 사람이다. ” 이건희 삼성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39) 삼성전자 전무를 두고 삼성전자의 한 임원이 했다는 이 말은 그룹 내부뿐 아니라 밖에서도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이재용씨가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한 올해 1월 즈음이었다. 그룹 지주회사 격인 삼성에버랜드를 통해 그룹 전체를 쥐고 있는 그의 입지와, 전무 승진에 이어 최고고객책임자(CCO) 보직을 맡은 사실은 ‘갈 길’(그룹 회장직)로 한발 한발 다가서고 있음을 보여줬다.

치부 드러나도 ‘법적’ 걸림들은 없으나

지난 10월29일부터 11월26일까지 약 한 달간에 걸쳐 숨막히게 이어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고백으로 총수 일가의 치부가 날것 그대로 드러났음에도 이 전무의 ‘갈 길’을 막아설 결정적인 ‘법적’ 걸림돌은 아직 없어 보인다.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 ‘삼성에버랜드 사건’ 증인·증언 조작 같은 초대형 불법 비리 혐의가 곧바로 이 전무의 자리를 위협하기에는 한계를 안고 있다. 대부분의 혐의가 검찰 및 특별검사 조사에 이은 법정 다툼을 통해 진실을 가려야 할 사안이다. 모든 진상이 고백 내용 그대로 드러난다 해도 책임 범위는 이학수 전략기획실장(부회장), 김인주 전략지원팀장(사장) 등 ‘가신그룹’에 머물 수 있다. 처벌 수위가 최대로 넓혀지더라도 마지막 귀착점은 이건희 회장일 것이다.

숱하게 거론됐듯 이재용씨가 삼성의 지배권을 획득한 고리는 헐값에 인수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였다. ‘삼성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 대목이며, 이는 삼성 비자금에 대한 특검의 조사 대상에 명시적으로 포함돼 있다. 삼성 쪽으로선 당연히 최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삼성에버랜드 사건에 관한 특검 조사의 핵심 과제는 김 변호사의 고백대로 ‘그룹 차원의 조직적인 공모’가 있었는지를 가리는 일이다. 이 조사가 자칫 미궁에 빠질 경우 이재용 전무의 삼성 권력은 ‘법적’인 정당성을 인정받게 된다. 이재용 전무로선 ‘갈 길’이 훤하게 열리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그룹 차원의 조직적인 공모가 있었음이 특검 조사에서 명확하게 드러나고 법원에서 이를 인정받는다고 해도 이재용 전무의 자리는 적어도 ‘법적’으로는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헐값의 CB를 매개로 손에 쥔 ‘삼성 권력의 열쇠’(삼성에버랜드 지분 25.1% 등)를 강제로 내놓게 할 방법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1996년에 저질러진 일이어서 부당이득 반환 청구의 공소 시효(10년)는 이미 지났다. 다른 한 방법인, 민법에 바탕을 둔 CB 인수 계약 무효화로 해결하는 방안 역시 여의치 않다. 인수 계약 무효를 위한 소송의 주체는 삼성에버랜드라는 법인이기 때문이다. 계열사가 그룹 총수직 예약자에게 소송을 건다는 건 애당초 가능하지 않다.

조승현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법학)는 따라서 “어떤 경우든 이재용씨의 그룹 지배권에 위협으로 작용할 ‘법적 리스크’는 별로 없다”고 말했다. CB 헐값 발행이라는 범죄(배임, 횡령) 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더라도 ‘사회적 책임’과 ‘명예’의 문제일 뿐이라는 분석이다. 특히나 삼성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에 대한 검찰, 특검의 수사로 이어진 단서였던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11월6일 고발장 피고발인 명단에 이 전무의 이름은 없었다.

이 전무가 법적 리스크를 안고 있는 분야는 ‘e삼성 사건’의 피고발인으로 올라 있는 게 거의 유일한 예다. 이재용씨가 투자한 e삼성, e삼성인터내셔널, 가치네트 등 인터넷 벤처기업들의 주식을 제일기획 등 삼성 계열사들에 떠넘김으로써 손해를 입혔다는 혐의로 2005년 10월 참여연대로부터 고발당한 사건이다. 아직 검찰의 기소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이 사건의 조사 결과에 따라선 이재용씨가 횡령죄로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삼성에버랜드 건에서와 달리 이재용씨가 직접적인 당사자다. 대주주인데다 경영을 책임진 자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 이 전무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물리는 단서가 될 수는 있어도 삼성의 지배권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는 사안이다.

그렇다면 이재용 전무의 ‘갈 길’에 적어도 ‘법적’인 암초는 전혀 없을까?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

삼성그룹 총수 일가는 두 가지 큰 고민을 안고 있다. 첫 번째는 총수 가문의 지분율이 너무 낮다는 점이다.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가문의 삼성그룹 지분은 4.5%에 지나지 않는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가문의 지분으로 그룹을 장악해 관리하는 게 불가능하다.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그룹의 덩치가 급팽창한 데 따른 현상이다. 한국 재벌 가문들의 공통적인 고민거리인데, 삼성의 경우 정도가 특히 심하다. 계열사 지분까지 합쳐야 보유 지분은 30% 안팎이다. 다른 재벌들과 달리 삼성에만 있는 두 번째 큰 고민거리는 ‘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이다. 삼성은 금산분리 원칙을 담아놓은 ‘금융산업 구조개선법’을 위반한 상태이며, 현재 이를 해소하는 과정에 있다. 또 지금의 지배구조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금융지주회사법까지 어기는 지경에 빠진다. 어쩌면 몇 년 뒤 삼성 지배구조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관측은 그래서 나온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개정 금산법은 삼성과, 삼성의 로비를 받은 관료조직의 압박으로 심의 과정에서 일부 왜곡되긴 했어도 삼성 총수 가문에는 여전히 눈엣가시다. 올해 8월부터 시행된 개정 금산법은 금융회사가 취득한 동일 기업 집단 내 비금융 계열사 주식 중 5% 초과분에 대해 1997년 3월 이전 취득분은 2년 유예 뒤 의결권을 제한하고, 그 이후 취득분은 즉각 의결권 제한과 함께 5년 내에 자발적으로 매각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금융감독위원장이 처분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담겨 있다.

이에 따라 삼성카드가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 중 5%를 초과한 20.6%는 앞으로 5년 안에 매각해야 한다. 또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7.3% 가운데 5%를 초과한 2.3%에 대해선 2009년부터 의결권이 제한된다.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과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은 총수 가문의 지배력을 보장해주는 핵심 장치로 꼽힌다. 개정 금산법에 따라 그룹 지배구조에 변화를 꾀해야 할 처지에 빠진 곳은 삼성그룹뿐이다. 이 때문에 삼성을 겨냥한 법이라는 비판이 있는데,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동부그룹 등 다른 재벌들과 달리 삼성만 유독 금산분리 법규에 저항한 데 따라 빚어진 결과일 뿐이다. 삼성은 로비를 통해 법 잣대를 바꾸려고 한 흔적까지 남겼다.

이재용 전무의 앞날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건 삼성에버랜드 사건의 최종 귀결보다 오히려 금산분리 정신을 담은 관련 법규라고 할 수 있다. 삼성에버랜드 사건이 기왕에 저질러진 ‘과거완료형’이라면, 금산분리 법규는 ‘현재 진행형’ 내지 ‘미래형’의 위협이다. 이는 또한 ‘사회적 책임’이나 ‘도덕적 정당성’의 차원 이전에 ‘법적인 문제’다.

삼성생명 상장되면 금융지주회사법과 충돌

이건희 회장(3.7%)이 이재용 전무(25.1%) 및 계열사 등 특수관계인과 더불어 보유하고 있는 삼성에버랜드 지분이 90.2%에 이르기 때문에 삼성카드 보유 지분 중에서 20.6%를 덜어내더라도 총수 일가의 지배력에 당장 구멍이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생명 → 전자 → 카드 → 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가 약해지는 건 분명하다. 더욱이 총수 일가의 삼성에버랜드 지분만 놓고 보면 50% 아래다. 그룹의 구조 변화에 따라선 총수 일가의 영향력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20.6%의 가치는 6천억원 안팎으로 추정되고 있어 총수 일가의 사재로 매입하기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생명이 상장될 경우 삼성 총수 일가가 삼성생명 지분 일부를 매각하고 그 자금으로 삼성카드가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매입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된다. 삼성생명이 상장되는 순간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금융지주회사법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왜 그럴까? 기업이 보유한 자산 중 금융회사 지분이 총자산의 50%를 초과하면 그 회사는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제2조 4항)에 따라 금융지주회사로 분류된다. 금융지주회사가 되면 법 제19조에 따라 금융업종 외 다른 회사의 지배를 원칙적으로 할 수 없다. 이런 법규는 삼성의 지배구조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삼성에버랜드의 총자산 중 49%는 삼성생명 주식(13.3%)이다. 문제는 이것이 장부가로 계상하는 편법적인 회계에 의해 겨우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생명이 상장될 경우 사정이 달라져 ‘시가’로 평가해 계상해야 한다. 이에 따라 삼성에버랜드의 총자산 중 삼성생명 지분이 50%를 훨씬 넘게 되면서 에버랜드는 금융지주회사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이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면, 삼성그룹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제조업 그룹과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그룹으로 나뉘어야 한다. 이재용 전무의 처지에서 볼 때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해 지배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재용 삼성 회장’은 어렵고, ‘이재용 삼성금융그룹 회장’ 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마저 힘들 수 있다. 삼성전자의 어마어마한 덩치 때문에 금융계열사들을 순환출자의 고리에 끼워넣는 변칙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는 총수 일가 지분만으로 회사를 지배하는 게 쉽지 않다. 사실, 금산분리 원칙을 둘러싼 치열한 논란의 뿌리는 바로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재벌 문제 전문가인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가족기업은 가족기업답게 발전하는 게 좋다”며 “이재용씨로선 금융과 제조업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공기업이 민영화된 것을 빼고는 대체로 가족 지배 상태인데, 문제는 총수 일가 지분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많아야 10%도 안 되는 적은 지분으로 절대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건 가족기업이 아니다. ” 가족기업답게 되려면 일부 기업에선 손을 털고 거기서 마련된 자금으로 장악하고 싶은 핵심 기업에 지분을 집중시키는 게 바람직하며, 점차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 직면한다는 설명이다. 삼성의 엄청난 힘을 이용해 우리 사회의 법규를 삼성 총수 가문에 유리하게 뒤바꿔버리는 시도를 할 수 있겠지만, ‘삼성 공화국 논란’에 이어 ‘삼성 독재’ 시비까지 불거진 터라 쉽지 않다.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전무로 이어지는 과정의 ‘논란’과 ‘홍역’은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에서 이건희 회장으로 승계되는 과정의 ‘말썽’과 많이 닮아 있다. 1987년 이병철 회장 사망 당시 11조원을 웃돈 삼성그룹의 자산과 경영권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이건희 회장이 국세청에 납부한 상속·증여세는 모두 180억원이었다. 이재용씨가 조 단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재산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낸 세금이 16억원에 지나지 않았던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차이라면, 이재용씨로 넘어가는 과정에선 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같은 신종 금융기법이 활용됐지만, 이건희 회장에게 이양되는 과정에서 동원된 매개체는 ‘공익재단’이었다. 이병철 회장의 재산을 일단 공익재단으로 넘겨 세금을 피한 뒤 시차를 두고 이건희 회장에게 물려주는 방식이었다.

이건희 회장 시대에는 사회적 감시망이 부실해 탈세 의혹은 유야무야됐다. 공익재단을 매개로 이병철 회장의 지분이 이건희 회장으로 넘어갔다는 실태를 온전하게 파악해낸 게 국내 조사기관이나 연구자가 아니고, 핫토리 다미오(服部民夫)라는 일본인 교수(도쿄경제대학)였다는 사실에서 국내의 감시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삼성의 ‘이재용 시대’를 앞둔 지금의 한국 사회는 예전과 많이 다르다. 이재용 전무의 지분 승계 과정은 본질적으로 ‘이병철 → 이건희 회장’ 때의 복사판임에도 ‘도덕성 논란’을 넘어 ‘법적 문제’로 번져 있다. 외환위기 뒤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경제민주화 운동이 벌어지고, 상속·증여세법 개정, 주주대표 소송제 도입, 불법 승계에 대한 형사 고발 등 탈법을 막으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전개된 데 따른 변화다. 이재용씨가 아버지 세대의 관성에 머물러서는 변화에 적응할 수 없는 이유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도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는 “삼성이 신뢰도를 유지하고 훼손된 이미지를 복구하기 위해선 법적 제재 여부를 떠나 삼성(총수 일가) 자신이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결국 그것은 ‘총수 가치’ 경영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주주 가치’ 경영을 한다면서도 실상은 ‘총수 가치’ 경영을 해왔다.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에서 드러난 대로 이재용씨에게 경영 지배권을 승계하기 위해 그룹 차원의 공모에 따라 계열사들이 그의 주식을 사주고, 그 과정에서 해당 계열사들의 주가는 떨어져 주주들이 손해를 입었다. 이걸 어떻게 주주 가치 경영이라고 할 수 있나?” 조 교수는 “총수 일가의 전횡에서 벗어나 시민사회 단체라든가 협력업체, 노동조합 등이 모두 참여하는 ‘이해당사자 모델’의 기업집단으로 다시 태어나는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는 삼성이 이번에 법적 제재를 용케 피해간다 해도 비슷한 사태가 반복적으로 불거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을 주시해온 이들 사이에선 이재용 전무가 그룹 경영권을 쥘 경우, 앞 세대의 가신그룹과 낡은 관행을 없애고 올바른 경영의 틀을 짜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작고하기 1년 전인 1986년에 펴낸 자서전 <호암자전>에는 이런 대목이 들어 있다. “내가 삼성을 창업하고 발전시켜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삼성이 나 개인의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주주가 누구이든 회장과 사장이 누구이든 삼성은 ‘사회적 존재’이다. 그 성쇠는 ‘국가 사회’의 성쇠와 직결된다. ” 21년 전 재벌 회장의 입에서 나온 ‘사회적 존재’라는 표현은 마치 오늘날 시민단체의 성명서에 나오는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전무에게 창업주의 이 발언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삼성은 왜 버티기를 시도하나

가장 큰 관심사는 사법 처리의 범위가 이건희 회장까지 이를 지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고백으로 드러난 각종 불법 비리 의혹에 대한 삼성그룹의 대응 양상은 일단 ‘버티기’이다. 김 변호사에 이어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이용철 변호사의 폭로 뒤 삼성의 반박 강도가 많이 약해지긴 했어도 제기된 각종 의혹을 몽땅 부정하는 기본 태도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시민사회 일각에서 제기되는 양심 고백 뒤 대타협안 제시라는 해법을 기대하기는 당분간 어려워 보인다.

삼성이 버티기를 시도하는 배경은 대략 두 가지로 풀이된다. 첫째로는 이미 써먹은 방안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삼성은 그동안 여러 차례 제기된 불법 비리 의혹을 꼬리 자르기 식의 인적 청산이나 거액의 사회 헌납 같은 방법으로 무마해왔다. 더 이상 카드를 꺼내들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방식을 이미 활용해본 터다.

첫 번째와 연결돼 있기도 한 또 하나의 중요한 배경은 이번에 불거진 사안이 워낙 방대하고 다양한데다 경영권 불법 승계라는 본질적인 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점이다. 개별 사건 차원을 넘어 총수 일가에까지 닿는 구조적인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대응책을 쉽게 마련할 수 없는 것이다.

삼성 쪽의 가장 큰 관심사는 사법 처리의 범위가 이건희 회장에까지 이를 것인지 여부다. 검찰에 이은 특검의 수사 결과에 따라 대응 태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른 정권의 향배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참여연대 초창기 경제민주화위원장으로 재벌개혁 운동을 주도했던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삼성이 지금까지 했던 방식으로는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없을 것”이라며 “그룹의 구조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회창이나 이명박 후보가 당선될 때 정권적인 차원의 타결을 지으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잘못하다간 정권도 같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 장 교수는 사태가 지금처럼 커진 게 “삼성에도 원인이 있지만, 한국 사회의 지식인이란 자들이 ‘침묵의 바다’에 빠져 있었던 데서 비롯된 바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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