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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주면 부자가 된다

신오덕 2008. 3. 8. 20:25

7위 경제대국이 목표? 성평등 97위는 어쩌고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올해 3월 8일은 이 기념일이 만들어진지 정확히 100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에 더욱 그 의미가 남다르다.

100년 전인 1908년 3월 8일, 미국 뉴욕의 루트커스 광장에는 1만5000여명의 여성노동자들이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하루의 절반 이상을 고되게 일해야 했던 여성노동자들은 2년 전 작업장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추모하며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또한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했던 여성의 권익향상을 위해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권을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비록 뉴욕 경찰에 의해 무참하게 진압 당하긴 했지만 이 날은 전 세계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익보호를 위해서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일깨워 줬다는 점 때문에 상징적인 날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노동자 대투쟁이 한창이었던 지난 1988년부터 공식적으로 기념행사가 열려왔으며, 최근엔 민주노총한국노총 등이 이 날을 기해 ‘여성노동자대회’를 개최하는 등 여성계와 노동계가 함께 의미를 부여하는 기념일이 됐다.

세계 여성의 날 제정 100주년.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으니, 세상이 열 번쯤 바뀌었을 법한 시간이 흘렀다. 실제로 100년 전 여성노동자들이 겪었던 절박함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2008년을 사는 한국 여성들, 특히 여성노동자들에게는 아직 해결해야할 과제가 너무도 많다. 여성의 날이 역사적으로 노동문제에서 출발했지만, 한국 여성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현실은 아직도 척박하기 그지없다는 의미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실시한 연구조사만 살펴봐도 이 같은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여성노동자의 67.7%가 비정규직이며 42%가 저임금 노동을 하고 있다. 특히 하루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일용직의 경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85.4%에 달한다.

단적으로 임금순위를 살펴보면 정규직 남성, 비정규직 남성, 정규직 여성, 비정규직 여성 순서다. 여성이 육아문제를 담당하기 시작하는 30대 이후부터 비정규직 비율이 급속히 늘어나는 것을 볼 때, 여성노동자의 열악한 고용형태는 사회구조적 측면에서 비롯된 것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내와 어머니가 차별받고 있는 셈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6년도 지방의회 의원의 여성 비율은 14.5%, 국회의원은 13.6%에 불과하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지난해에 조사한 결과를 보면, 비교적 차별을 덜 받을 것으로 여겨지는 공무원 집단의 경우에도 여성은 5급 12.1%, 4급 5.3%, 3급 4.0% 3급과 2급은 각각 1.8%, 1.6%로 고위직으로 갈수록 남초 현상이 심각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정부조직개편 당시 여성부를 협상의 산물로 활용했으며, 마치 시혜를 베풀 듯 부서 존치를 약속했다.

100년 전 뉴욕 여성들이 광장에 모여 자신들의 권익향상을 외쳤던 그런 방식을 또다시 답습하라는 의미일까. 이명박 식 ‘작은 정부’는 여성에게, 여성노동자들에게 거리로 뛰쳐나가라고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르다고 해서 새 정부에 무조건적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부처만 존치됐을 뿐, 현재의 상황은 여성부 출범 당시만도 못하다”는 여성부 내부의 자조 섞인 푸념이 권력의 최고 상층부에까지 고스란히 전달되길 바랄 따름이다.

끝으로 한 가지 숫자만 더 언급하고자 한다. 세계 7위 경제대국을 목표로 ‘747 정책’을 펼쳐나갈 이명박 정부의 핵심 실세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숫자가 있다. 바로 97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지난 해 각국 여성의 경제참여와 기회부여 정도, 교육 성취도, 정치권한 등을 기준으로 조사한 ‘성 격차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조사대상 128개국 중 97위를 차지했다.

7위 경제대국을 목표로 뛰는 대한민국, 성 격차지수는 97위다. 이것이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을 맞는 한국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