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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마인드로 성공하라

신오덕 2009. 2. 25. 17:05

‘탱크’ 배순훈의 마지막 도전

헤럴드경제 | 입력 2009.02.25 11:27

 

 


CEO서 장관ㆍ교수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김수환 추기경 조문행렬 보며 카이스트 특훈교수 포기

봉사하는 마음 더욱 굳혀 응모 내우외환 미술계 현안 해결

기무사터에 미술관 건립 창의력 발전소로 꼭 만들겠다

"고국의 과학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돌아왔다"는 천편일률적인 답변 대신 "어머니와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 연속극을 보고 싶어서 (미국 MIT 교수직을 뒤로 하고) 돌아왔다"는 사람. 화가인 아내를 위해 쓰레기 분리수거며 정리정돈 등 특정(?) 집안일을 전담하는 사람. 목에 잔뜩 힘주는 일은 도대체 체질이 아닌 사람. 바로 배순훈(66) 전 정통부 장관이다. 대중에게 '탱크사장'으로 각인되며 대기업 회장과 정부 부처 장관까지 역임했던 그가 이번에는 직급이 한참 못 미치는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임명돼 또다시 화제다.

"임명장을 받은 후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어째서 장관을 했던 사람이 1급도 안되는 실장급(별정직) 관장에 지원했느냐'는 겁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답하죠. '그만큼 국립현대미술관장이 근사한 자리인데 몰랐느냐? 장관까지 했던 내가 탐낼 자리인데 모두 너무 모른다'라고요. 물론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되겠죠. 하지만 21세기는 정말 문화가 중요한 시대고, 문화경영 CEO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나요? 그래서 지원했습니다."

배순훈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해보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며 마지막으로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택한 길이어서 주위 시선이나 보수 같은 것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더라도 그의 관장 취임은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손해보는 장사'다. KAIST 부총장을 지내며 정년이 무기한인 특훈교수 지위까지 부여받았지만 미술관장이 되며 후배에게 물려주고 나왔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월급도 적고, 전용차 등도 제공되지 않는 자리다. 게다가 축 처질대로 처진 과천 미술관을 활성화하는 일이며, 기무사 터에 미술관을 조성하는 일까지 산적한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배 관장은 "지난해 8월 말 KAIST의 특훈교수 지위를 부여받았다. KAIST 안에서도 5명 정도만 있는데 정년이 없는 교수다. 이를 포기하는 데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혀 새로운 곳에서 봉사할 기회가 생겼고, 후배 교수에게도 길을 터주니 좋은 일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김수환 추기경을 조문하려고 꼭두새벽부터 명동으로 몰려드는 조문행렬을 보면서 얼마 남지않은 생이지만 앞으로는 좀 나누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을 새롭게 일으켜 국민의 사랑을 받게 하는 일을 멋지게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문화예술을 키우고, 문화예술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마음이 요즘 크게 위축돼 있다. 경기가 최악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 국민의 저력을 믿는다. 우리는 위기극복 유전자를 지닌 국민이다. 문제는 감춰진 그 DNA가 보란듯 발휘되도록 계기를 만드는 거다. 한국인의 저력을 오랫동안 목도한 사람으로서 길은 분명히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그는 금융과 예술 부문 지원을 놓고 신중히 고려했는데, 미술계가 발전이 유난히 더딘 것 같아 국립미술관장에 지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젊은층과 어울리길 좋아해 서울대 경영대의 젊은 교수들과 종종 만나는데 그들이 "국립미술관이 너무 침체돼 있는데 교수님 같은 분이 응모해 새롭게 개혁하고 이끌면 어떻겠느냐"고 독려해 지원했다는 것.

그는 미술과 인연이 꽤 깊다. 중ㆍ고교 때부터 그림을 각별히 좋아했고, 서울대 공대 재학시절에도 미대생과 자주 어울렸다. 그러다가 현재의 아내인 화가 신수희(65) 씨와 결혼했고 그런 피를 이어받아 아들 정완(35) 씨는 건축가 겸 설치미술가로 활동 중이다. 뉴욕서 변호사로 일하는 딸 희영(32) 씨도 예술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딴 재원이다. 처형 또한 서울대 음대 학장을 역임한 피아니스트 신수정(67) 씨다.

때문에 배 관장은 틈만 나면 미술관과 공연장을 찾곤 한다. 최근엔 영화 '워낭소리'를 보고 큰 감동을 받기도 했다.

대우전자 CEO 시절에는 외국 관계자와 만날 때마다 미술관을 동행하곤 했다. 루브르나 오르세박물관 카페에서 점심을 먹으며 대우전자의 해외진출 등을 논의하곤 했다는 것. 지금도 그렇게 만났던 유럽이며 미국 관계자와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데 '미술관에서의 미팅과 데이트, 참 유익하고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어떤 그림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는 "인상파 그림에 매력을 느낀다. 모네의 수련 그림을 특히 좋아한다. 국내 화가 중에서는 박서보 선생의 그림도 좋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비(非)전문가인 배 관장의 국립미술관장 발탁에 대해 논란도 많다. 그저 미술을 애호한다고 해서 어려운 시기에 미술관을 제대로 이끌겠느냐는 우려가 만만찮은 것. 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1993년 대우전자 사장 시절 '탱크주의' TV 광고에 함께 출연한 인연 때문에 관장에 선임돼 '코드인사'라는 비판도 많다. 이에 대해 그는 "코드인사라고 하는데 나는 김대중정부 시절 정통부 장관을 했고,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는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장을 맡았던 사람"이라고 일축했다.

또한 비전문가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미술계 사람이 아니니까 오히려 더 새로운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문화를 업그레이드하면서 세계적인 산업화도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대우전자 사장 시절 버려진 광산지역이었던 스페인 빌바오에 구겐하임미술관이 들어서는 것을 구상단계부터 쭉 지켜봤다. 미술관 외관재로 쓰인 특수강은 원래 그곳서 만들어지던 거다. 미술관 건설로 빌바오는 도시가 살아났고, 특수강 산업도 활기를 찾았다"고 전했다.

그렇더라도 미술 애호와 미술관 경영은 완전히 다른 영역일 수 있다. 이에 그는 "전시기획이며 컬렉션은 내부 전문가에게 맡기겠다. 그들이 신바람 내며 일할 수 있도록 조직을 이끌면 되지 않겠는가? 나는 미술관 기금 모금, 외부 투자 등 보다 큰 밑그림을 그리겠다"고 밝혔다.

배 관장은 우리나라가 경제규모에 걸맞게 문화발전을 이뤄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술 분야에도 우리 여건과 역량에 맞는 '위기극복 유전자'가 분명히 내재된 만큼 주위 전문가와 함께 이를 적극적으로 찾아내겠다는 것. 그는 "경복궁 앞 기무사 터에 세계 정상의 노먼 포스터나 장 누벨 같은 건축가가 참여해 미술관을 짓는다고 하면 외국 투자사도 관심을 가질 것"이라면서 기무사 터 미술관을 '창의력 발전소'로 꼭 만들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이영란 기자/yrlee@heraldm.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m.com

지인들이 본 배순훈 관장은

유인촌 문화부 장관
진짜 근사한 삶 행동으로 보여주신 멋진 분


1993년 대우전자의 '탱크' 광고를 찍으면서 배순훈 관장을 만났으니까 어느새 15년이 넘었다. 보통 광고주와 모델로 만나면 그때 뿐인데, 배 관장과는 인연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가끔 만날 때마다 '문화예술을 말뿐이 아니라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구나'라고 느끼곤 한다. 돈이 목표인 삶은 허망한 삶이고, 문화예술이 목표인 삶이 '진짜 근사한 삶'임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멋진 분이다. 국립미술관이 그의 취임으로 확 살아나길 기대한다.

김원 건축가
늘 웃는 모습…긍정마인드를 지닌 나의 절친


배순훈은 내 가장 가까운 친구다. 그는 '긍정'의 마인드를 지닌 사람이다. 군살 하나 없는 몸매에 늘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그는 또 어머니를 끔찍히 사랑한다. "잘 나가던 미국생활을 접고 귀국한 것은 '어머니와 연속극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방송에서 만천하에 공표했을 정도다. "어머니가 한국전쟁 때 스물일곱의 나이로 네 명의 자녀를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을 갔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느냐"며 아직도 작고한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또 아내사랑도 남달라 친구들로부터 핀잔과 압박을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