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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망울을 터트리는 순간을 확인하라

신오덕 2013. 1. 31. 14:03

눈과 매화

  • 13.01.29 08:5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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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리 추워도 세월이 흐르면서 봄날은 온다. 유난히 추웠던 올해 겨울도 점점 극점을 지나 끝이 보인다. 아직 겨울 동안 내린 눈들이 곳곳에 쌓여 있지만, 며칠전 포근한 날씨 덕분에 많이 녹아서 남쪽 지역에는 눈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고통스러운 일들이 계속되더라도 강한 정신으로 살아가면 눈 녹듯이 점차 사라지는 것이 삶의 법칙이다. 만약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당장에 어떤 일을 결정하려고 덤비면 아주 좋지 못한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얼마 후면 입춘이다. 아직 봄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보면 봄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무는 땅을 딛고 사는 생명체라서 그 누구보다도 봄의 기운을 빨리 느낀다. 그래서 계절을 알려면 식물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봄의 기운을 받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나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매화다. 지금 남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매화가 꽃망울을 머금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언제 꽃망울이 터질지는 지역과 매화가 살고 있는 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눈 속에 피어나는 매화를 설중매라 부르지만, 굳이 눈 속의 매화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매화를 통해 봄을 준비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사군자 중 하나인 매화는 겨울에 꽃이 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절개를 높이 평가하지만, 나는 매화가 다른 나무들이 꽃을 피우지 않는 겨울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좋아하지는 않는다. 내가 매화를 좋아하는 것은 자기만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만약 매화가 다른 나무들과 달리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좋아하는 대상이라면, 추운 겨울이 아닌 더운 여름이나 시원한 가을에 꽃을 피우는 나무는 어떻게 평가할까. 나무가 꽃을 피우는 시기는 오로지 자신이 살아가는 시간표에 따른 것이지, 다른 나무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니 매화가 언제 꽃을 피우느냐에 따라 호불호를 결정하는 것은 한 그루 나무에 대한 옳은 평가가 아니다. 


    모든 새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벌레를 잡아먹지 않듯이, 모든 생명체의 아름다움은 각자 삶의 시간표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데 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무조건 빨리 뭔가를 달성하기에 급급하다. 특히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하면서 살아가는 데 익숙한 나머지 진정 자신의 삶을 사는 데는 낯설다. 나무에게 왜 꽃이 늦게 피었느냐고 핀잔할 수 없듯이, 왜 빨리 가지 않느냐고 다그치지 않는 삶이 행복할 것이다. 삶의 발걸음은 사람마다 다른 법이거늘, 모두 같은 발걸음으로 가자고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세상의 나무들이 한꺼번에 꽃을 피우지 않아서 아름다운 것이지, 한꺼번에 피우면 아름답지 않다. 


    얼마 후면 전국에서 꽃 소식, 즉 화신(花信)이 언론에 오르내릴 것이다. 매화가 많이 살고 있는 곳에는 상춘객으로 넘쳐날 것이다. 그런 곳에 찾아가서 꽃의 향연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살고 있는 매화 한 그루만이라도 오랜 시간 함께 보내는 것도 아주 경제적인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