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검사생활서 대표적 특별수사통으로 활동
19대 총선서 새누리당 공천위원장으로 '국민눈높이 공천' 주도
(서울=연합뉴스) 김화영 기자 = 지난해 4ㆍ11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장으로서 `공천개혁'을 주도했던 정홍원 변호사가 8일 박근혜 정부의 첫 국무총리로 지명됐다.
30년간 검사로 활동했고 공직을 떠난 후에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거쳐 변호사로 활동해온 법조인이다. 경남 하동 출신으로 성균관대 법정대를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김용준 전 총리후보자의 낙마 후 두번째 총리 지명에서도 법조인을 택한 것은 법치(法治) 실현에 대한 의지로 해석된다.
정홍원 후보자는 박 당선인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새누리당을 이끌던 작년 1월31일 4ㆍ11총선 공천위원장으로 발탁됐다.
법조계 출신으로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편이 아니었으나, 당시 여당의 유력 대선후보였던 박 당선인의 정치개혁 의지를 담아 공천을 주도하는 중책을 맡으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정 후보자는 1972년 사범시험(14회)에 합격하면서 검사로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1982년 이철희ㆍ장영자 부부 사기사건을 비롯해 `대도' 조세형 탈주 사건, 수서지구 택지공급 비리사건, 워커힐 카지노 외화 밀반출 사건 등을 처리해 특별수사통검사로서 경력을 쌓아갔다.
1991년 대검 중앙수사부 3과장 시절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컴퓨터 해커를 적발했으며, 서울지검 남부지청장으로 재직하면서 `민원인 후견인 제도'를 도입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또한 대검 감찰부장으로 재직할 때에는 `검찰 낮술 금지'를 실시해, 내부 개혁에도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법무부 법무연수원장 때인 지난 2004년 5월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앞두고 사시 동기들과 함께 후배들을 위해 용퇴했다.
정 후보자는 공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강직한 성품으로 주변으로부터 신망을 받고 있다는 게 법조계 인사들의 대체적 평이다.
검사 생활 때에는 거창한 좌우명을 갖지는 않았지만 `진실하고 성실하겠다'는 것을 늘 마음에 담아왔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개성이 강하지 않은 온화하고 원만한 성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평판을 바탕으로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이 바뀔 때마다 후보군에 오르내렸으나 장관직에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대한변협에 의해 삼성 비자금사건 특별검사 후보로 추천된 적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맡았으나 공단이 법률취약계층 위한 `친서민 법률복지기관'으로 자리잡는데 주로 역할을 하면서 그의 강직한 면모가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다.
정 후보자는 2011년 2월부터 새누리당 공천위원장으로 흔히 `칼자루'에 비유되는 공천심사를 진두지휘하면서 일거수 일투족을 주목받았다.
취임 일성으로 `쓴 잔을 마시는 용기와 신념'을 던진 그는 도덕성을 공천의 제1기준으로 거론했다.
선거 때마다 뒷탈이 따르는 공천의 총책을 맡으면서 그는 "공천은 정도(正道)로 가고 그에 대한 저항이나 반발은 뚫고 가겠다"면서 사심없는 자세를 공천위에 주문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비교적 잡음없이 공천을 이끌어왔다는 평을 이끌어냈다. 특히 현역의원 하위 25%를 탈락시키는 `컷오프룰'을 `헌법'에 비유하며 예외없이 적용시켜 눈길을 모았다.
부인 최옥자(62)씨와의 1남.
▲경남 하동(69) ▲성균관대 ▲사시 14회 ▲서울지검 특수1ㆍ3부장 ▲대검 감찰부장 ▲광주지검장 ▲부산지검장 ▲법무연수원장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새누리당 19대총선 공직후보자추천위 위원장 ▲법무법인 유한로고스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