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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철과 신념
거장의 위대한 삶을 확인하라 본문
[Art & Culture] "사람들 칭찬은 필요없어" 코미디 거장의 삐딱한 삶
78세 거장 영화감독 우디 앨런 매일경제 입력 2013.10.25 15:57 수정 2013.10.25 16:19
"방에서 글을 쓸 땐 다 대단해 보여요. 혼자 보니까. 하지만 촬영에 들어가면 현실이 시작되죠. 위대한 작품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모두 작아지고 내 몸이라도 팔겠다는 지경이 됩니다. 이 참사에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말이죠."(다큐멘터리 '우디 앨런 :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중에서, 우디 앨런) 1978년 제50회 아카데미 시상식. 아카데미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까지 주요 4개 부문의 상을 한 영화에 몰아줬다. 바로 우디 앨런의 영화 '애니 홀'이었다. 하지만 시상식에서 우디 앨런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는 "매주 월요일 밤은 클럽에서 재즈 클라리넷을 연습하는 날"이라며 시상식에 가지 않았다.
그로부터 34년이 흐른 2012년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 우디 앨런은 여전히 영화를 만들고 있었고, 아카데미는 또 한 번 그의 영화에 상을 줬다. 이번엔 각본상이었다. 우디 앨런 영화 중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수립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그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이번에도 볼 수 없었다. 그에게 시상식이나 영화제, 홍보활동은 모두 무의미하다. 세월이 흘렀고 영화의 결도 깊어졌지만 그의 모습은 34년 전과 같았다.
우디 앨런(78)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10대 때 신문에 짧은 유머 글을 써서 유명해진 그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인기를 얻었고, 배우로 영화에 데뷔했으며, 수십 편의 영화를 만들어 이제는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듣는다. 그 과정에서 여러 배우들과 연애를 했고,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으며, 지금은 전 애인이 입양한 딸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다. 그의 작품은 여전히 예측할 수 없고, 여전히 삶에 대한 불평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럼에도 꾸준히 영화를 만든다.
◆ "죽음에 대한 내 입장은 같아요. 완전 반대합니다" 우디 앨런은 '웃기는 사람'으로 유명해졌지만 늘 불편했다. 사람들 앞에 서서 코미디를 하는 것이 그에겐, 잘 할 수 있지만 힘든 일이었다. 그러던 중 '고양이'(1965년)라는 작품으로 배우로서 영화에 데뷔했고, 그는 앞으로 영화에 출연할 거라면, 자신이 만든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다짐한다. 이후 그는 40여 편의 영화를 매년 한 편꼴로 공개하고 있다.
초창기 그는 데뷔작 '돈을 갖고 튀어라'(1969년) 이후 '바나나공화국'(1971년), '섹스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 모든 것'(1972년), '슬리퍼'(1973년) 등으로 코미디 영화 감독으로 인식됐다. 슬랩스틱 코미디건, 언어 유희건 영화 속에서 웃음이 터지는 장면은 수없이 이어졌고 냉동인간이 되어 200년 후 태어난 주인공(슬리퍼), 사정 직전의 정자(섹스에 대해서…) 등 기상천외한 설정의 주인공을 직접 맡아 연기했다.
그러던 그의 영화가 재조명된 계기는 단연 '애니 홀'(1977년)이었다. "우주가 팽창하는데 숙제는 해서 뭐 해요?"라고 묻는 어린 시절 우디 앨런의 자전적 모습이 담긴 이 작품으로 그는 단순히 코미디언이 아닌 삶을 통찰하는 작가로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후 '맨해튼', '카이로의 붉은 장미', '브로드웨이를 쏴라', '매치 포인트'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서 미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 잡는다.
국내에서 그의 작품이 대중적 인기를 얻기 시작한 건 최근 그가 일명 '유럽시리즈'를 하면서부터다.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조차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그가 바르셀로나, 로마, 파리 등을 돌아다니며 영화를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2008년)라는 이름으로 개봉된 영화의 원제는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라는 원래 제목처럼 스페인에서 촬영됐고 '미드나잇 인 파리' '로마 위드 러브' 등에서 유럽의 곳곳을 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담아내 '관광 영화'라는 별명까지 듣게 됐다.
장르, 배경, 이야기 등 그의 영화는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꾸준히 신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즉 삶의 의미를 묻는다. 2010년 칸 영화제에서 그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만드는데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기자의 말에 "죽음에 대한 제 입장은 같다"며 "완전 반대한다"고 말해 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는 영화를 통해 어차피 죽는데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꾸준히 질문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빛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는 자신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우디 앨런 :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2011년)에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하는 칭찬을 믿지 않는다"며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에겐 오로지 그 스스로에게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 "다시는 우디 앨런 영화를 수입하고 싶지 않아요" 한국에서도 그의 작품은 지난한 세월을 겪었다. '우디 앨런'이라는 이름은 한국 영화 '시장'에서 어떤 의미를 갖지 못했다. 독특하고 기발하지만, 엉뚱하고 불편하기도 한 그의 작품은 대중과 동떨어졌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러던 중 2012년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개봉됐다. 이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총 1억5000만달러(약 1580억원, 박스오피스모조닷컴 기준)의 수입을 올린 우디 앨런의 최고 흥행작이었다. 물론 해외에서 흥행했다고 해서 국내에서도 반드시 잘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작품은 국내에서 35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바로 전해 개봉한 영화 '환상의 그대'가 2만5000명을 모은 데 비하면 기록적인 수치다.
'미드나잇 인 파리' 이후 그의 작품은 대규모 개봉을 잇고 있다. 지난 4월 개봉한 '로마 위드 러브'는 18만명을, 지난달 개봉한 '블루 재스민'은 24일 현재 12만명을 동원했다. '미드나잇…' 만 한 흥행은 아니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우디 앨런의 영화를 수입한 이들은 크게 기뻐하지 않는다. 그의 영화를 개봉하기까지 워낙 까다로운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다. 포스터에 알파벳순으로 배우의 이름을 표기하라는 원칙 때문에, 한글로 번역해도 순서를 바꿀 수는 없었다. 유명 배우 이름을 먼저 쓰고 싶어하는 홍보사들에는 지옥 같은 일이다. 영화의 장면을 미리 뽑아서 TV프로그램에서 홍보하려 해도 쉽게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다. 개봉 전까지 아예 영상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저 '우디 앨런 영화'라는 점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것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를 수입한 박병국 더블앤조이픽쳐스 대표는 "컨펌을 받아야 하는 사항이 너무 많아서 영화를 사서 개봉하기까지 열 달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다시는 우디 앨런의 영화를 수입하고 싶지 않다"고 혀를 내둘렀다. '로마 위드 파리'와 '블루 재스민'을 국내에 소개한 이주연 프레인 마케팅 부장도 "포스터도 함부로 손댈 수 없고 홍보에 쓰려고 해도 영상을 쓰는 걸 쉽게 허락 받을 수 없었다"며 "쏟아야 하는 비용과 노력이 너무 커서 한번 우디 앨런의 영화를 수입했던 이들은 다시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우디 앨런이 이렇게 까다롭게 구는 데는 결과적으로 한 가지 원칙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관객'이다. 그에게 관객은 영화 관계자 누구보다 소중하다. 영화제나 시상식에 참여하고 미리 영상을 선보여 홍보를 하는 건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작품이고 그걸 보는 관객이라는 생각이다. 심지어 불법 다운로드를 하는 관객들에게 제재를 가하자는 말에도 우디 앨런은 반대한다고 한다. 그들도 '관객'이기 때문이다.
◆ "죽음에 대한 내 입장은 같아요. 완전 반대합니다" 우디 앨런은 '웃기는 사람'으로 유명해졌지만 늘 불편했다. 사람들 앞에 서서 코미디를 하는 것이 그에겐, 잘 할 수 있지만 힘든 일이었다. 그러던 중 '고양이'(1965년)라는 작품으로 배우로서 영화에 데뷔했고, 그는 앞으로 영화에 출연할 거라면, 자신이 만든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다짐한다. 이후 그는 40여 편의 영화를 매년 한 편꼴로 공개하고 있다.
초창기 그는 데뷔작 '돈을 갖고 튀어라'(1969년) 이후 '바나나공화국'(1971년), '섹스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 모든 것'(1972년), '슬리퍼'(1973년) 등으로 코미디 영화 감독으로 인식됐다. 슬랩스틱 코미디건, 언어 유희건 영화 속에서 웃음이 터지는 장면은 수없이 이어졌고 냉동인간이 되어 200년 후 태어난 주인공(슬리퍼), 사정 직전의 정자(섹스에 대해서…) 등 기상천외한 설정의 주인공을 직접 맡아 연기했다.
그러던 그의 영화가 재조명된 계기는 단연 '애니 홀'(1977년)이었다. "우주가 팽창하는데 숙제는 해서 뭐 해요?"라고 묻는 어린 시절 우디 앨런의 자전적 모습이 담긴 이 작품으로 그는 단순히 코미디언이 아닌 삶을 통찰하는 작가로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후 '맨해튼', '카이로의 붉은 장미', '브로드웨이를 쏴라', '매치 포인트'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서 미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 잡는다.
국내에서 그의 작품이 대중적 인기를 얻기 시작한 건 최근 그가 일명 '유럽시리즈'를 하면서부터다.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조차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그가 바르셀로나, 로마, 파리 등을 돌아다니며 영화를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2008년)라는 이름으로 개봉된 영화의 원제는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라는 원래 제목처럼 스페인에서 촬영됐고 '미드나잇 인 파리' '로마 위드 러브' 등에서 유럽의 곳곳을 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담아내 '관광 영화'라는 별명까지 듣게 됐다.
장르, 배경, 이야기 등 그의 영화는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꾸준히 신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즉 삶의 의미를 묻는다. 2010년 칸 영화제에서 그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만드는데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기자의 말에 "죽음에 대한 제 입장은 같다"며 "완전 반대한다"고 말해 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는 영화를 통해 어차피 죽는데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꾸준히 질문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빛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는 자신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우디 앨런 :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2011년)에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하는 칭찬을 믿지 않는다"며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에겐 오로지 그 스스로에게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2012년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개봉됐다. 이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총 1억5000만달러(약 1580억원, 박스오피스모조닷컴 기준)의 수입을 올린 우디 앨런의 최고 흥행작이었다. 물론 해외에서 흥행했다고 해서 국내에서도 반드시 잘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작품은 국내에서 35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바로 전해 개봉한 영화 '환상의 그대'가 2만5000명을 모은 데 비하면 기록적인 수치다.
'미드나잇 인 파리' 이후 그의 작품은 대규모 개봉을 잇고 있다. 지난 4월 개봉한 '로마 위드 러브'는 18만명을, 지난달 개봉한 '블루 재스민'은 24일 현재 12만명을 동원했다. '미드나잇…' 만 한 흥행은 아니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우디 앨런의 영화를 수입한 이들은 크게 기뻐하지 않는다. 그의 영화를 개봉하기까지 워낙 까다로운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다. 포스터에 알파벳순으로 배우의 이름을 표기하라는 원칙 때문에, 한글로 번역해도 순서를 바꿀 수는 없었다. 유명 배우 이름을 먼저 쓰고 싶어하는 홍보사들에는 지옥 같은 일이다. 영화의 장면을 미리 뽑아서 TV프로그램에서 홍보하려 해도 쉽게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다. 개봉 전까지 아예 영상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저 '우디 앨런 영화'라는 점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것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를 수입한 박병국 더블앤조이픽쳐스 대표는 "컨펌을 받아야 하는 사항이 너무 많아서 영화를 사서 개봉하기까지 열 달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다시는 우디 앨런의 영화를 수입하고 싶지 않다"고 혀를 내둘렀다. '로마 위드 파리'와 '블루 재스민'을 국내에 소개한 이주연 프레인 마케팅 부장도 "포스터도 함부로 손댈 수 없고 홍보에 쓰려고 해도 영상을 쓰는 걸 쉽게 허락 받을 수 없었다"며 "쏟아야 하는 비용과 노력이 너무 커서 한번 우디 앨런의 영화를 수입했던 이들은 다시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우디 앨런이 이렇게 까다롭게 구는 데는 결과적으로 한 가지 원칙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관객'이다. 그에게 관객은 영화 관계자 누구보다 소중하다. 영화제나 시상식에 참여하고 미리 영상을 선보여 홍보를 하는 건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작품이고 그걸 보는 관객이라는 생각이다. 심지어 불법 다운로드를 하는 관객들에게 제재를 가하자는 말에도 우디 앨런은 반대한다고 한다. 그들도 '관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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