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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겁지겁 통과한 법안을 점검하라

신오덕 2015. 7. 14. 12:21
[매경포럼] 사법시험 살려야 한다
기사입력 2015.07.13 17:43:21 | 최종수정 2015.07.13 19: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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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를 7개월 남겨놓은 2007년 7월 3일. 차기 주자들의 경쟁이 불꽃 튀던 이때 국회에서 54개 법률안이 통과됐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사립학교법`을 개정해야 다른 법률안도 처리하겠다며 완강하게 버티던 중이었다. 열린우리당은 `사립학교법을 통과시켜줄 테니 로스쿨법(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도 함께 통과시키자`는 빅딜에 가까스로 성공한다. 임시국회 폐회를 불과 3분 앞두고 이 법안들은 허겁지겁 통과됐다.

로스쿨법은 원래 국회 교육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심의를 차례로 거쳐야 했다. 여야 합의라는 미명 아래 이런 절차는 생략됐다.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직권 상정한 뒤 통과시켰다. 로스쿨 제도가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5년 제안되고 김대중·노무현정부를 거치며 오랫동안 논의된 건 사실이다. 1963년 시작된 사법시험에 69만명이 도전했지만 그 문턱을 넘은 사람은 2%에 불과했다. 나머지 98%는 `고시 낭인`으로 전전한다는 비판이 로스쿨 제도로 눈길을 돌리게 했다. 사법시험 합격자들이 법률서비스를 높이는 데 힘을 쏟기보다는 고시 선후배·동기생끼리 똘똘 뭉쳐 그들만의 법조계를 만든다는 비판도 로스쿨 주장에 힘을 보탰다. 마지막 관문에서 사법시험 합격자를 늘리는 등의 대안은 논의되지 못했다. 여야 빅딜이 있었을 뿐이다.

사법시험 1차 시험은 7개월 이후인 내년 2월 말 마지막으로 치러진다. 2017년엔 최종 합격자 50명을 배출하고 사법시험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사법시험을 대체하기 위해 전국 25개 로스쿨이 2009년 문을 연 뒤 과연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어느 언론이 2009년 이후 사법시험에 7년 동안 합격한 6000명을 조사해보니 판사·검사·변호사 자녀가 69명이었다고 한다. 로스쿨 도입 후에는 3년 동안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4500명만 따져봐도 그 숫자가 71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제 변호사시험에 응시하려면 대학 졸업 후 로스쿨에서 연간 1500만원 이상 수업료를 내고 3년간 더 공부해야 한다. 서민층은 아예 엄두도 내기 힘들 지경이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꼬집는 우스갯소리가 그저 생긴 게 아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중산층 지지로 당선되더니 외환위기로 중산층을 붕괴시켰다. 이어 김대중 대통령이 서민층 지지로 당선되더니 신용카드 사태를 거치며 서민층을 신용불량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그다음 노무현 대통령은 소외계층 지지로 `참여정부`를 출범시키더니 사법시험을 폐지하기로 했다. 소외계층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계층이동 사다리를 치워버렸다"는 우스개다.

로스쿨 체제는 공정성·투명성이라는 과제를 극복해야 한다. 로스쿨에 불합격한 학생들은 왜 떨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변호사시험 합격자들은 최근까지 자신의 시험성적조차 알지 못했다. 깜깜이 합격·채용이 이뤄지면서 법조계에선 `금수저 은수저 물고 나온` 변호사 얘기까지 회자됐다. 어느 대학총장 딸과 국회의원 딸은 로스쿨 졸업을 앞두고 대형 로펌과 대기업에 1차로 스카우트됐다. "성적순은 옛말이고, 이젠 끗발 순서"라는 새 질서 반영이다. 그런데 정작 그 딸들이 변호사시험에 불합격하면서 `끗발 스카우트`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 중에서 올해 처음 경력판사 37명이 선발됐다. 그들을 선발한 기준이 무엇인지도 아는 사람이 없다. 오죽했으면 대한변호사협회가 "심사기준, 탈락사유를 왜 공개하지 않느냐"는 성명까지 내놓았을까. 헌법재판소는 최근 변호사시험 성적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제 변호사시험 성적이 채용·임용의 주요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로스쿨 제도 도입으로 사법시험보다 나아진 게 무엇인지 한층 더 궁금해진다.

국민 75%는 사법시험 완전 폐지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국회에는 사법시험을 유지시키려는 법률안이 5건이나 제출돼 있다. 8년 전 한밤중에 얼렁뚱땅 통과시킨 로스쿨법을 더 늦기 전에 재정비해야 한다.

[최경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