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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약관을 정비하고 이해도를 높여라

신오덕 2015. 8. 27. 09:43
[기자 24시] 보험사와 금감원의 `약관 해저드`
기사입력 2015.08.26 17:16:23 | 최종수정 2015.08.27 09: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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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이후 실손의료보험에 중복 가입하고, 보험금을 청구했던 소비자들이 뒤늦게 총 300억원에 달하는 보험금을 돌려받게 됐다. 불명확한 약관으로 인해 보험사가 부담할 치료비 일부를 소비자가 부담했다는 금융감독원의 뒤늦은 판단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자기부담금 10%인 실손보험에 가입했는데 2개 이상 중복 가입했다는 이유로 자기부담금을 돌려주겠다고 하니 말이다. 보험사의 불완전판매로 인해 실손보험에 중복 가입한 줄도 몰랐는데 기대하지 못한 `공돈`을 받게 된 사례도 많을 것 같다. 2010년 금감원은 실손보험 가입자들의 중복 과잉 진료를 막기 위해 "중복 가입자들에겐 자기부담금을 뺀 90%만 보험금을 줘도 된다"고 보험사에 공문을 보냈다. 표준화한 실손보험 약관상 중복 가입자에게 자기부담금을 지급해야 하는지가 애매하다는 질문에 금감원이 그렇게 유권해석을 내린 것이다.

그 덕분에 보험금 지급 부담을 줄이게 된 보험사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사실 표준약관의 취지만 따져보면 중복 가입자도 자기부담금을 내는 게 맞는다. 그러나 약관이 명백하지 않으면 약관을 작성한 보험사가 아니라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작성자 불이익 원칙`에 위배된다는 논란이 일었다. 그런데도 금감원은 논란의 소지가 있는 표준약관을 즉시 고치지 않았고 보험사들도 금감원 공문만 믿고 개별 약관을 변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약관이 고쳐지는 내년부터는 중복 가입자도 자기부담금을 물어야 한다.

금감원 측은 "당시 법률 검토를 통해 약관을 면밀히 들여다본 뒤 공문을 보냈어야 했다"며 "그러지 못한 것은 실수"라고 시인했다. 보험 약관은 소비자의 권리를 담보해주고 법적 분쟁에서도 중요한 근거가 된다. 금감원과 보험사 모두 약관상 미비점을 인식하면서도 오랫동안 방치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무지와 무책임을 넘어 `모럴 해저드` 수준이다. 저금리·고령화 시대를 맞아 보험 수요는 더 커지고 있고 상품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어이없는 사태가 앞으로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아무쪼록 금감원과 보험사들은 철저하게 상품 약관을 정비하고 소비자들은 보험 상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