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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만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신오덕 2014. 6. 20. 10:50

 

[광화문에서/하태원]문창극의 선택, 박근혜의 선택

기사입력 2014-06-20 03:00:00 기사수정 2014-06-20 10:08:23

 

하태원 정치부 차장

 

10일 기자회견 도중 요란스러운 천둥과 섬광이 교차했고 비바람도 거셌지만 노신사(66)의 표정엔 행복감이 가득했다. 구름같이 몰려든 기자들의 시선 집중과 작렬하는 플래시에 ‘내게 드디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할 기회가 왔구나…’라는 확신을 가졌을 법했다.

범상치 않은 등장이었지만 앞으로 걷게 될 가시밭길의 전조(前兆)라고 자각하지는 못했으리라. “우리 후배들…” 하며 친근감을 표시했던 언론인들이 던질 세상에서 제일 아픈 말의 비수(匕首)에 맞을 운명이었단 사실도.

돌이켜보면 기회는 있었다고 본다. ‘하나님의 뜻’ 동영상이 파문을 일으킨 직후 11일 출근길에서 기자들에게 “사과는 무슨 사과”라고만 안 했어도. 발끈한 마음에, 자신의 발언이 거두절미됐다며 “언론의 명예훼손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하지 않았어도. ‘고생하는’ 기자들에게 “칼럼이나 읽어보고 말하라”고 대선배답지 않게 대응하지 않았다면….

19일엔 안중근 의사, 안창호 선생을 제일 존경한다고 했다. 소년 다윗처럼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이번 ‘설화’ 때문에 많은 밤을 고민하며 ‘현역 기자 시절 숱하게 논(論)하고 설(說)했던 ‘박심(朴心·박근혜의 마음)의 실체가 이런 거였나’라고 탄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랴. 이 모든 것이 ‘일인지하 만인지상’을 꿈꿨던 문창극 본인의 선택이었음을. 불퇴전의 각오도 뚜렷해 보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차갑기만 하다. 해외 순방 중엔 외교적·경제적 이슈에 집중해야 하니 귀국한 뒤 임명동의안 국회 제출 재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만 했다.

주변에선 설이 무성하다. 청와대가 이미 ‘문창극 카드’를 버렸다더라,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과 여권 핵심은 후임자 물색에 나섰다더라, 22일이 ‘디데이’라더라….

모든 게 문 후보자가 썼던 ‘박근혜 현상’(2011년 4월) 지적대로 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자기주장을 논리적으로 자세히 설명하지도,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지도 않는다. 그저 몇 마디 하면 주변의 참모가 이를 해석하고 언론은 그것을 대서특필한다. (중략) 자유인인 지금도 이럴진대 만약 실제 권력의 자리에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기막힌 탁견(卓見)이었다고 하면 비아냥거림으로 들릴까?

박 대통령은 10일 문 후보자 선택의 이유로 ‘냉철한 비판의식과 합리적인 대안을 통해 잘못된 관행과 적폐를 바로잡을 분’이라고 했다. 물론 대변인의 입을 빌렸다.

문 후보자가 박 대통령과 직접 만나 ‘세월호 민심’을 수습하고 난마처럼 얽힌 정국을 풀어나가기 위해 의기투합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이미 ‘박근혜 사람’이 된 이들도 자기가 왜 장관을 하고 수석을 하고 있는지 ‘창의적 해석’을 하고 있는 판에 뭘 기대하랴. 문 후보자는 박 대통령의 최우선 선택지도 아니었다.
 

 

정치를 모르는 순진한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의 결정은 빨라야 한다. 문 후보자가 스스로 물러나기를 기다리는 것은 그를 예우하는 게 아니라 ‘보수 논객’이 설 수 있는 마지막 자리마저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진짜 고민은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거취일 수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김기춘의 ‘유효기간’은 다했다.

시간만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아직도 총리지만 정홍원의 사의 표명일부터 따지면 54일째 총리 공백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각부 장관과 수석의 공백일을 단순 합산하면 놀라운 숫자가 나온다. 608일. 지난해 2월 25일 출범해 480일을 보낸 박근혜 정부가 처한 기막힌 현실이다.

 

 

[포토에세이] 시간을 바로잡는 손
기사입력 2014.07.07 17:33:20 | 최종수정 2014.07.07 17:3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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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과 휴가가 코앞입니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 즐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때입니다. 후회 없이 휴가를 즐기기 위해, 휴가가 내 삶을 더 빛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일분 일초를 헛되지 않게 보내야겠죠. 마치 손톱이 다 닳아 없어진 시계 장인이 고장 난 시계를 고쳐 살아 움직이게 하듯이요.

[이충우 기자]

 

 

[차길진의 갓모닝] 308. 누구에게나 ‘운명의 1도’는 있다

[일간스포츠] 입력 2014.07.01 07:00
 
얼마 전 미국 롸우니 장군의 회고록 ‘운명의 1도’를 발간했다. 인천상륙작전 계획을 수립했던 세 명의 주요 장교 중 한 명이었고, 흥남철수 당시 마지막 부대장이었던 롸우니 장군은 지금도 39선이 38선이 되었던 그 때를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만약 처음대로 39선이었다면 미국이 한국을 방어하는데 훨씬 용이했을 겁니다. 어쩌다 38선이 되는 바람에 북한의 남침을 막아내기 힘들어졌던 겁니다.” 한반도의 운명의 1도는 그렇게 큰 비극으로 찾아왔다.

살다보면 누구나 운명의 1도를 겪는다. 불시에, 전혀 뜻하지 않은 순간 찾아오는 운명의 1도는 인생을 180도 바꾸어 놓기도 한다. 나와 친한 법조인 A씨. 그는 바쁜 와중에 부지런히 백일기도에 나와 참선을 하면서 명상에 정진하고 있다.

그런 그에겐 결정적인 운명의 1도가 있었다. “저는 학교에서 알아주는 운동권 학생이었습니다. 반면에 B라는 친구는 조용하고, 순하고 공부만 열심히 했었죠. 그런데 하루는 학교에서 큰 집회가 열린 겁니다.” 그는 집회용 대자보를 잔뜩 갖고선 도서관 쪽으로 달려갔다. 집회가 시작되기 전 도서관에 대자보를 붙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갑자기 운동권 친구 중 한 명에게 급한 일이 생겨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대자보는 붙여야하고 친구는 만나러 가야하고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 때였다. 저 앞에서 같은 과 친구인 B가 보이는 것이었다. B는 집회 참석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 공부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그는 B에게로 달려가 갖고 있던 대자보와 전단지를 한 아름 안겼다. B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말 미안한데, 잠깐 이거 갖고 도서관에 가 있어라. 나 5분만 친구 좀 만나고 올게.” B는 5분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 알았어. 5분 있다가 오는 거지?” “그럼! 5분 후에 도서관으로 바로 올게.” 그리고는 친구를 만나러 뛰어갔다.

그런데 예고치 않은 경찰병력이 학교를 덮쳤다. 오늘 학교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린다는 얘기를 듣고 학교 안으로 집회 주동자들을 체포하러 온 것이었다. “하필 그 경찰들이 B가 있는 도서관으로 진입한 겁니다. 아무 죄도 없는 B는 집회용 대자보를 갖고 있었다는 죄로 체포돼 바로 퇴학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사건이 B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을지요.”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된 B는 민주화운동에 투신, 소신 있는 정치인이 됐지만, 정작 경찰이 체포하려고 했던 A는 법조인으로서 성실한 삶을 살고 있다. “그때 제가 잡혔어야 했습니다. 그랬으면 B처럼 정치인으로 떴을 텐데 말이죠. 허허허.”
 
살다보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운명의 1도가 찾아온다. 정치인 B처럼 1도의 작은 틀어짐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틀어진 1도를 원망하기보다 이를 잘 받아들여 더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